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로 녹음…대법 "증거능력 없다"

교사 A씨, 전학생에 막말 등 정서적 학대 혐의
1·2심서 유죄 판단…녹음파일 증거능력 인정
대법 "공개안된 타인간 대화, 증거능력 없어"
파기환송…"A씨의 유무죄 판단한 것은 아냐"
  • 등록 2024-01-11 오전 10:44:39

    수정 2024-01-11 오전 10:48:4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에 담긴 녹음파일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는 기존 판례와 부합하는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은 부정된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뉴스1)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A씨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이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해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녹음파일은 통신비밀보호법 14조 1항을 위반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므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이번 파기환송 결정은 이 사건에 증거로 제출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원심의 법리오해를 이유로 한 것이다. A씨의 유무죄 여부는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다투게 될 예정이다.

2심 증거능력 인정…“공공 성격, 다른 수단도 없었다”

2018년 서울 광진구 소재 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던 A씨는 전학생 B에게 “학교를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돼있다” 등의 말을 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학대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A씨의 이같은 행위는 B의 학부모가 가방에 몰래 넣어둔 녹음기를 통해 확인됐다. 선생님에게 심한 말을 들었다는 B의 말에 부모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고 해당 녹음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1심은 A씨에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A씨는 ‘비밀리에 녹음한 부분은 위법증거수집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2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 발언 중 일부는 초등학교 교사가 수업과 관련해 취할 수 있는 조치 내지 발언으로 보인다”고 봤다.

그러면서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에 담긴 녹음파일에 대해서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초등학교 교육은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므로, 교사 A씨가 수업시간 중 교실에서 한 발언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의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피해아동의 보호를 위해서 녹음 외에 별다른 유효적절한 수단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증거를 수집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 “교실 내 발언은 공개된 것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시간 중 한 발언은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다”라며 “대화 내용이 공적인 성격을 갖는지 여부나 발언자가 공적 인물인지 여부 등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아동의 부모는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의 상대방, 즉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한 당사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몰래 녹음한 A씨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타인간의 대화’에 해당한다”며 증거능력 부정 판단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교사의 수업시간 중 교실 내 발언을 그 상대방이 아닌 제3자 즉, 학생의 부모가 녹음한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에 정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해 현행법상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오해를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것”이라며 “유무죄에 관해 종국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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