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예리 경상대 초빙교수] 정부는 지난 22일 ‘연대·공조를 통한 국익 극대화 통상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가 올 초부터 준비해 온 우리의 사실상 첫 통상정책 로드맵이다. 원래 5월 말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전략적 판단을 거쳐 3개월 정도 늦게 공개됐다. 통상교섭본부는 1998년 김대중정부에서 외교통상부가 출범하며 처음 설립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는 등 변화가 있었으나 공식적으로 통상정책 로드맵을 발표한 적은 없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정부 초기 ‘자유무역협정(FTA) 정책 추진 로드맵’을 발표한 게 전부다. 세계 7대 무역국으로 발전한 우리나라가 통상전략 보고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던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여러 국가는 통상전략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번 통상정책 로드맵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중추 통상국가’로 전진하기 위한 핵심적인 통상전략을 처음으로 확립했다. 3년 내 세계 5위 무역국가 및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 경제영토 확보란 구체적인 목표도 담았다. 세계은행(WB)은 지난 8월 1일 발표한 ‘2024년 세계개발보고서: 중진국 함정(World Development Report: middle-income trap)’에서 개발도상국이 중진국 진입 후 장기간 성장이 정체되는 ‘중진국 함정’에 빠진다고 진단하며, 이를 슬기롭게 탈출한 사례로 우리나라를 들었다. 한국을 ‘성장 슈퍼스타’라고 극찬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사, 특히 무역을 통한 경제 발전 전략을 세계 개도국들이 참조하도록 추천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본을 추월할 전망이다.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통상정책의 탄력성이 취약하다. FTA 추진 실적, 무역의존도 등에서 양국의 차이가 크다. 통상정책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통상교섭본부는 FTA 협상에 주력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공급망 교란과 경제안보 이슈가 부각된 현재의 통상환경에서 국민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통상환경의 면밀한 분석과 함께 구체적인 추진전략을 수립하고,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무역 추세에서 나타나듯, 시간이 갈수록 중국과의 거래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통상당국의 고민은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정책에 일견 부응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유지하고, 나아가 중국 수출 감소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이다. 이번에 발표된 통상정책 로드맵은 이에 대한 해법을 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통상정책 로드맵에서는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와의 광역 단위의 다층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상세히 담았다. 특히 원조와 국익이 조화되는 가칭 ‘K-산업 연계형 공적개발원조(ODA)’ 정책 추진은 그 효과를 단기적으로 실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2배로 늘어난 ODA 예산을 산업통상정책과 연계시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 이번 보고서가 이미 발표한 내용을 ‘재탕’하며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은 적절치 않다. 이는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목표와 전략을 전반적이고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개요인 만큼 신선하고 파격적인 이슈를 기대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다. 전문가,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해 완성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윤석열 정부의 통상정책 전략이라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추진 의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세계 어느 국가도 내부용으로 작성한 풀 버전에 포함한 구체적인 전략은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미 최종 국내 절차인 국회 보고만 완료하면 CPTPP 가입을 추진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의 첫 통상정책 로드맵이 나온 만큼 단점을 들춰내기보다는 통상당국이 이를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지지와 성원을 보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