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줘' 음성과 뇌수술 환자 진술로는…대법 "범죄 증명 못해"

뇌수술 환자 폭행 혐의로 간병인 재판 넘겨져
1심 '징역형 집유' 선고 → 2심·대법은 '무죄'
"의심 여지없는 증명력 필요…폭행 인정 불가"
  • 등록 2022-08-04 오후 12:00:00

    수정 2022-08-04 오후 12:00:00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폭행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뇌수술 후유증을 보이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범행을 증명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주막하출혈 등으로 뇌수술을 받은 피해자를 병실에서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940년생으로 사건 당시 79세였던 피해자 A씨는 지난 2019년 7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다. 피고인인 B씨는 A씨가 20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간병인으로 일했다. B씨는 피해자 A씨가 퇴원하기 직전 이틀에 걸쳐 A씨 손을 침대에 고정시킨 후 피해자의 팔과 다리를 꼬집고 비틀거나 턱밑 부위를 수차례 때린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사용될만한 증거로 같은 병실을 사용한 다른 환자의 가족이 촬영한 영상이 있었다. 해당 영상에는 A씨가 2분 이상 흐느끼는 소리가 계속 들리다가 “사람 좀 살려주소”라고 말하는 음성이 녹음돼 있었다. 다만 환자 침상간 커튼이 처져 있는 상황이라 B씨가 A씨를 직접적으로 폭행하는 장면은 촬영돼 있지 않았다.

피고인 B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A씨를 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범행일시를 제외하고는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고, 휴대폰 촬영 동영상이 피해자 사생활 영역에 관계된 것이라 하더라도 형사절차상의 공익과 비교해 보면 이를 증거로 사용하는 것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피해자의 진술과 휴대폰 촬영 동영상을 증거로 피고인 B씨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18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 B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A씨는 뇌수술 이후 ‘섬망’(뇌의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 증상이 있었고, A씨가 수술 부위 등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간병인 B씨로 하여금 A씨 팔목에 고정용 장갑을 착용시키도록 한 의사의 처방이 있었으며, 동영상 촬영 당시 병실 내 4명의 사람이 더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B씨의 폭행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2심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하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B씨가 A씨를 폭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사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원은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2심판결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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