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테슬라 충전망인 슈퍼차저 담당 인력을 대부분 해고한 뒤 충전소 확장 속도를 늦추겠다고 선언하면서 전기차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북미에서 전기차를 파는 대다수 기업들이 이미 테슬라의 충전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속도 조절로 업계 뿐만 아니라 전기차 전환에 드라이브를 걸어온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한 서클 K 주유소 근처에 있는 테슬라 충전소.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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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최근 테슬라의 충전 인프라 담당 책임자인 레베카 티누치와 그의 밑에서 일해온 약 500명의 슈퍼차저팀 인력 대부분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했다.
테슬라는 이번 결정에 대해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머스크 CEO는 전날 엑스(X, 옛 트위터)에서 “테슬라는 여전히 슈퍼차저 네트워크를 확장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위치에 대해서는 더 완만한 속도로 추진하고, 기존 위치의 100% 활용과 확장에 더 집중할 것”고 밝혔다. 충전 사업의 속도 조절을 인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테슬라의 속도 조절 방침에 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이번 해고로 텍사스에서는 12개 충전소 건설이 중단됐다. 뉴욕에서는 충전소 건설을 위한 테슬라와 부동산 소유주들의 논의가 철회되는 등 파장이 일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차량 업체들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테슬라는 지난해 자체 충전소를 경쟁업체에 개방하자 북미 지역 자동차 업체들이 테슬라의 북미전표준(NACS)을 채택하기로 했다. GM과 포드는 테슬라의 충전 사업 속도 조절에도 기존 계획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GM은 성명을 통해 “테슬라 수퍼차저 팀의 변화와 잠재적인 영향에 관한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추가 의견이나 업데이트할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테슬라의 충전기를 활용하려는 다른 자동차 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잠재적으로 손상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가 부족한 충전 네트워크인데, 충전소 확장 속도가 더뎌지면 수요 전망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테슬라는 경쟁사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충전소를 구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기차 시장 분석 업체 EV어덥션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3월까지 설치한 충전 포트는 1526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증가했다. 이는 다른 충전 제공업체보다 4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WSJ는 “테슬라는 다른 종류의 자동차에 네트워크를 개방하고 충전기를 위한 공공 자금을 확보해 왔으며, 이는 전국적인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테슬라가 전기차 충전을 중단하면 미국 시장 전체가 둔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전환 계획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정부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위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특별법(NEVI)’을 시행하면서 전기차 충전소 네트워크 구축에 75억달러의 보조금을 배정해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