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수 조원대 손실이 갑자기 터지면서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관리, 감독 부실 논란이 도마에 올랐을 때였다.
그 해 국정감사에선 대우조선이 6월 20일경 산은에 대규모 손실 사실을 보고했고, 당시 홍기택 산은 회장은 닷새가 지난 25일에서야 손실 규모를 파악했음이 드러났다. 이후 사석에서 만난 홍 회장에게 손실 파악이 왜 늦어졌는지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국감에선 지난해 4월까지 재직한 고재호 전 사장이 이사회에서 해양플랜트 사업이 예정기간보다 1년 정도 늦어지는데 이 금액이 2조5000억원이라고 말한 사실까지 밝혀졌었다. 산은이 대주주로서 이사회 의사록만 뒤져봤어도 6월에 뒤늦게 손실을 파악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홍 전 회장은 “공사기간이 예정보다 늦어진다는 것이었지, 이것이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사에겐 공사기간이 예정보다 늦어진다는 것은 미청구공사 금액이 증가해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해 고개가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 사태에서도 보듯이 산은이 대주주인지, 주채권은행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산은은 그때마다 대주주로서 한 번도 제대로된 권한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말해왔다. 산은은 사외이사도 제대로 임명해보지 못 했고, 대주주로서 반대했던 사업도 대우조선이 정치권의 힘을 빌어 강행해왔다는 항변이다. 산은이 오로지 한 것은 대우조선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해온 것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대주주로서의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해 본적도 없다면 주채권은행으로선 어떤가. 선수금 환급보증(RG)이나 신규 대출을 지급할 때 수익성 평가를 제대로 하고 자금지원이 이뤄졌는지 모르겠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키로 해 이미 3조2000억원을 수혈 받았는데도 추가 자구안이 필요할 만큼 나빠진 상황이다. 시중은행들이 RG발급 한도를 축소할 때 산은 등은 대우조선은 어디까지나 정상 기업이라며 그러지 말 것을 권고했다. 산은의 이러한 행동은 주채권은행으로서의 ‘손실 최소화’보다는 국책은행으로서 금융당국이 정한 구조조정 방향을 실행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을 한 것인가, 아니면 부실기업을 연명하게 하면서 책임 논란을 뒤로 미룬 것인가.
조선, 해운 등 구조조정의 최정점에 서 있는 업종들의 여신이 국책은행에 몰려 있기 때문에 국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러한 구조조정은 한계에 와 있다. 국책은행이 아니라 시중은행이었어도 마찬가지다. 자율협약, 워크아웃 등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외환위기 때 이러한 구조조정 방식이 대기업들이 해외로 헐값에 매각되는 일을 막았다지만 그 때보다 채권 이해관계자들이 넓어진데다 구조조정 기업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선 맞지 않다.
미국은 구조조정이 필요할 경우 주주끼리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고 컨설팅 회사와 함께 구조조정을 한다. 구조조정만 하는 컨설팅 회사도 따로 있다. 실패하면 법정관리로 간다. 정부는 대규모 실업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고, 채권단은 혹시 모를 유동성에 대비해 브릿지론 정도만 대주면 된다. 구조조정 방식의 근본적 처방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