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서류 장벽'에 막혀버린 정부의 中企 지원

  • 등록 2018-05-27 오후 5:37:23

    수정 2018-05-27 오후 5:37:23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정보통신(IT)기업인 A사는 최근 공공조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좌절을 맛봤다. 특정 분야에서 1위를 달리는 강소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한 방대한 서류를 맞추는 건 경험해보지 못한 도전이었다. 백과사전 굵기의 서류를 제본해 십여 권의 책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기존 업무는 마비됐다. A사 실무자는 “제출 서류를 다 모으니 박스 몇 개 분량”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A사는 결국 공공조달 분야에 정통한 ‘브로커’와 손잡았다.

정부가 혁신성장형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며 각종 지원을 늘리고 있다. 중앙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의 조달도 중기지원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여기에 참여해야 할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은 몇 박스 분량의 서류라는 ‘보이지 않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지원·조달사업에 유리한 건 성장성 있는 기업이 아니라 이 분야에 익숙한 ‘꾼’이라는 건 이쪽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은 일반인은 모르는 공무원이 원하는 서류작업을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턱은 오히려 최근 들어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부 공공기관·지자체가 도입한 조달 기업 대상 ‘퇴직공무원 채용 현황 확인서’ 제출 조항이 대표적이다. 퇴직 공무원의 전관예우를 뿌리 뽑겠다는 취지와 달리 기업에게 ‘비리’ 책임과 부담을 전가하는 조치란 비판도 나온다. 지자체 납품 중소기업 B사 대표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까지 제출토록 하는 건 사실상의 규제”라고 말했다. 조달시장에선 차라리 적당히 접대하면 불필요한 절차를 생략할 수 있었던 예전이 더 나았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초 열린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민간의 혁신성장 촉진을 위해 공공조달 시장에서 혁신·벤처 기업을 우대하고 더 새로운 수요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원이 아무리 늘어도 그 혜택이 ‘꾼’에게만 돌아가는 현 상태론 현장 체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공공부문에서부터 기존 방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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