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원시림 속을 나는 지금 걷고 있다. 버섯…그리고 이끼 낀 지면과 나물들에서 풍겨오는 냄새…깊은 숲의 습기를 머금은 냄새…꽃 향기다. 수많은 붉고 작은 꽃, 하얀 꽃도 있어…아아 이 얼마나 화려한 열매인가 …블루베리? 라즈베리? 신선한 체리와 딸기도 있다. 여기는 비밀의 샘이며 화원이기도 하다. 연인? 말 할수 없는 관능…이것은 완성된 한폭의 그림이다. 아니 사람 이야기다"
위에 나오는 시적 표현은 최근 사회적으로 신드롬 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인 킨자키 시즈쿠가 프랑스 브르고뉴 와인 `샹볼 뮤지니(Charnbolee Musigny)`를 맛본 뒤 느낌을 표현한 것입니다.
`신의 물방울`은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입니다. 와인 전문가 간자키 유타카의 유언에 따라 그의 아들 시즈쿠와 경쟁자 토미네 잇세가 `신의 물망울`과 `12사도`라 불리는 13병의 와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 내용입니다.
공전의 히트작 `미스터 초밥왕`의 와인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죠. 초밥왕처럼 기본적으로 대결구도의 흥미진진함과, 와인으로 감동을 선사하려는 에피소드들 그리고 명랑만화스러운 분위기가 넘칩니다.
`신의 물방울`은 일본에서는 95만부가 팔렸고, 국내에서도 현재 55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지난 연말에는 기업체 임원 등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만화책을 선물용으로 단체 주문해 와인과 함께 나눠주는 것이 유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만화속에 등장한 와인은 여지없이 동이 나고 값이 뛰어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났는데. 특히 전통적 강세였던 프랑스 보르도 와인 대신 `신의 물방울`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브루고뉴 와인이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네요.
프랑스 농식품진흥청 통계로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브르고뉴 와인 수입액이 전년에 비해 40.3%나 늘었다고 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기본적인 와인 시음법은 색, 향, 맛을 차례로 음미하며 즐기는 것인데, 이제는 와인을 마시니 신의 물방울의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는 등의 왜곡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재미를 위해 임팩트가 강한 소재에 치우치거나 특정 와인을 굉장히 부풀려서 포장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오타쿠(특정 분야에 대한 광신적 전문가 증후군) 문화가 반영된 만화책을 와인 교과서처럼 대하는 것은 한국의 와인 문화 수준이 갈 길이 멀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반성도 뒤따릅니다.
게다가 제1사도, 제2사도로 등장한 `조르쥬 루미에 샹볼 뮤지니 레 자무레즈 2001`과 `샤토 팔머 1999`는 전국 각 매장에서 이미 품절됐고, 10권에 등장할 제3사도는 `욘사마` 배용준씨도 구하지 못해 안달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일본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하네요.
이런 저런 비판소지가 있는 현상들에도 불구하고,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은 우리나라의 폭음 문화를 어떤 쪽으로든 개선시켜줄 것이라는 긍정론이 우세합니다.
기자들의 술문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기자사회에서는 폭탄주가 많이 줄어든 상태이기도 하구요.
신의 물방울 흉내를 내가며 즐기기에는 와인 값이 너무 비싸죠? 술을 대하는 제 태도가 달라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 만화책을 읽은 효과가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