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부시 오찬 메뉴에 올라온 우륵(牛肋)

  • 등록 2008-08-05 오후 5:17:38

    수정 2008-08-05 오후 6:40:43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대체재란 서로 다른 재화에서 같은 효용을 얻을 때 쓰는 말이다. 연필과 샤프, 쌀과 빵 등이 그렇다. 반면 보완재는 둘이 같이 있을 때 효용이 더 높아지는 경우다. 휘발유와 자동차, 바늘과 실 등이 그런 예다.

미국산 쇠고기와 한우는 대체재일까. 아니면 보완재일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한우 농가가 망한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걸 보면 '대체재'에 가까운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점심 메뉴를 보면 라면과 라면스프같은 '보완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명박 대통령이 6일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함께 할 오찬의 메뉴가 '미국산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한우 갈비'로 결정됐다고 한다.

김은혜 부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오찬 메뉴로 김치가 나오면 좋아하지 않겠느냐"며 미국산 쇠고기 메뉴가 부시 대통령 내외를 각별히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한우갈비는 누구를 배려한 메뉴일까.

미국산 쇠고기만 내놓자니 여전히 남아있는 쇠고기 파동의 불씨가 맘에 걸리고 한우를 내놓자니 미국산 쇠고기 수입해놓고 자기들은 한우를 먹는다는 비판이 께름칙했음에 틀림없다.

부시 대통령 오찬 테이블에 미국산 스테이크와 한우갈비 두가지를 모두 내놓기로 한 청와대의 결정은 단순한 메뉴의 선택이 아니라, 여러가지 고민들이 같이 녹아있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자 장고끝에 나온 묘수이기도 하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보면 대체재인 한우갈비와 미국산 안심 스테이크가 정치적으로는 보완재로 사용되는 건 묘한 아이러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기회는 두 번이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대통령 식탁에는 오르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는 대체재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완재인 미국산 쇠고기의 속성 때문이었다.

지난달 8일 청와대 구내식당은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불고기 반찬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쇠고기 파동이 일단락된 후 처음으로 청와대에 등장한 미국산 쇠고기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지만 이날 오전에 급히 취소됐다. 하필 그 날은 대통령이 아침 일찍 일본 도야코로 G8 확대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날이어서 정작 대통령은 쇠고기를 못 먹을 상황이었다.

당시만 해도 쇠고기 파문의 불씨가 남아있는 때여서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를 나서서 먹어도 여론이 좋지 않을 수 있고, 대통령만 쏙 빠지고 직원들만 먹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는 판단이 메뉴를 취소한 배경으로 알려졌다.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요리는 대통령이 귀국한 직후인 10일 청와대 구내식당 점심 반찬으로 등장했지만, 이날도 한나라당 지도부와 따로 오찬을 한 대통령은 쇠고기 반찬을 먹지 못했다. 한나라당 지도부 오찬 메뉴도 쇠고기로 하려고 했으나 역시 여론 부담때문에 '굴비'로 급히 바꿨다는 후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홍보에만 나서는 것 같아 여론이 신경쓰이지만, 그렇다고 청와대가 나서서 한우를 먹기도 찜찜하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수입해놓고 청와대는 한우 먹는다는 여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시중의 식당에서는 이미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의 시장을 잠식하는 중이라고 한다. 대체재 중에 효용과 만족도가 높은 재화를 상급재라고 부른다는 경제학 교과서를 참고하면, 미국산 쇠고기는 상급재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만큼은 미국산 쇠고기가 홀로 식탁에 오르기 어렵고, 굴비나 한우갈비와 함께 올라가야 효용이 생기는, 굴비의 보완재이자 한우의 보완재에 지나지 않는다.

먹을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한우나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청와대라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 둘의 대체재인 호주산 쇠고기와 비교할 때 두말할 것 없는 하급재임에 틀림없다.

닭갈비라는 뜻의 계륵(鷄肋)은 먹자니 부담스럽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쇠고기 메뉴를 둘러싼 청와대의 속앓이를 생각하면 부시와의 오찬에 오르게 될 한우 갈비 역시 '우륵(牛肋)'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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