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0억유로(약 14조40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은행의 모든 예금에 세금 성격인 일회성 부담금을 물리려던 키프로스 정부는 10만유로(약 1억4400만원) 이상 고액 예금에만 과세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키프로스는 당초 10만유로 이상 예금에는 9.9%, 이 이하에는 6.75%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지만 예금자들이 반발이 거세자 소액 예금은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10만유로 이상만 과세..의회 표결 분수령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이날 저녁 유로존 재무장관들과 긴급 전화회의를 갖고 “소액 예금자는 고액예금자와 똑같이 다뤄서는 안된다. 10만 유로 이하 예금은 완전히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유럽중앙은행(ECB)은 예금 과세를 통해 58억유로(약 8조3500억원)를 징수할 수 있다면 개별적인 세율은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고액 예금의 대다수가 러시아 예금으로 알려진 가운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부담금 과세는 남의 돈을 몰수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미칼리스 사리스 키프로스 재무장관은 19일 오전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다.
“유럽 지역간 불신 노출..유로 생존 위협”
FT는 키프로스에서 남·북 유럽간 불신의 문제가 불거졌다며 이는 자칫 유로화와 EU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유로화 통화와 EU 체제 유지를 위해 키프로스를 도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예금에 대한 과세를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다만 키프로스가 대표적 조세피난처로서 역외자금 규모가 상당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전체 700억유로(약 100조7200억원) 예금 가운데 200억유로(약 28조7800억원)가 러시아 예금이고 이는 대부분 불법자금에 해당한다. 따라서 북유럽 국가들이 부패 문제가 심각한 남유럽 국가를 돕기 위해 부담금 조건을 내세웠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례적 조치인 부담금 과세가 선례로 자리잡고 뱅크런 사태가 야기되는 상황에 대해 유럽 지도자들은 위험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FT는 지적했다.
CNN머니 역시 구제금융이 지원되지 않는다면 키프로스는 재정적 책임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며 이는 유로 생존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