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네팔 마오이스트 보다도 못한 정부

  • 등록 2006-08-18 오후 7:09:22

    수정 2006-08-18 오후 7:09:22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이 지금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국왕이 국민들의 반발에 못 이겨 백기를 들었고 반군인 마오이스트는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얼마 전 네팔에서 마오이스트와 맞닥뜨린 권소현 기자는 왜 그들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지 이해가 간답니다.

"우리는 마오이스트다! 여기는 우리 구역이다. 그러니 통행료를 내라. 안 그러면 이 다리를 못 건넌다"

네팔 안나푸르나 산군을 트래킹할 때였습니다. 마지막날 조그만 다리 앞에서 딱 막혔습니다. 자신들이 마오이스트라고 주장하는 남자 세 명이 다리 입구를 막고 돈을 요구하더군요.

사실 이번 여행에 네팔을 넣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이유 중 하나가 마오이스트였습니다. 정부군과 마오이스트간 대치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거든요. 마오이스트는 중국 공산당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의 사상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농민 해방을 기치로 내걸고 10여년간 정부군과 싸워왔는데 현재는 네팔 영토의 40% 이상을 장악했을 정도로 세를 불린 상태입니다.

주로 무장투쟁을 벌여온 마오이스트들은 급기야 지난 4월 사상 초유의 국가총파업을 벌였습니다. 네팔 국민들도 이에 동조해 갸넨드라 국왕의 하야와 왕정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경찰이 폭력 진압에 나서면서 유혈사태로 번졌습니다. 대부분의 신문에 시위의 격렬함을 전하는 기사와 온통 피투성이가 된 네팔 국민들 사진을 실렸습니다.
다행히 국왕과 마오이스트가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네팔을 무리없이 여행할 수 있게 됐지만 마오이스트의 이미지는 소총으로 무장하고 시위대 선봉에서 왕정 타도를 외치는 거친 모습으로 각인됐죠.

그런데 꾀죄죄하고 왜소한 남자 세 명이 마오이스트라고 나타났으니 어땠겠습니까. '지금 장난하냐?'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이들은 통행료로 한명당 1000루피를 요구했습니다. 좀 억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네팔 정부에 입산료를 냈거든요.

이미 2000루피를 냈다며 허가증을 보여줬더니 지금 안나푸르나 산군은 마오이스트들이 점령했고 정부의 허가증 검문소는 모두 없애버렸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라고 하더군요.

돈을 안 내는게 아니라 없어서 못 내는거라고 버텼습니다. 트래킹 마지막 날이라 돈은 다 썼고,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택시비만 남았다고 시치미를 뚝 뗀거죠. 사실 그때 제 수중에는 2000루피도 넘는 돈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랬더니 마오이스트들은 얼마를 낼 수 있냐고 묻더군요. 머뭇거리다가 "우리 둘이 합쳐서 500루피?"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단번에 '오케이'하면서 영수증을 써줬습니다. 더 적게 부를걸 그랬나 후회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다리를 건너 안락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포터에게 마오이스트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단 안나푸르나 산군 지역을 마오이스트가 장악하면서 이 지역에 사는 구릉족들의 세금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고 합니다.

구릉족들은 대부분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키우면서 살거나 트래킹 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롯지나 식당을 운영해 생활합니다. 생활이 그렇게 윤택하지는 않죠. 마오이스트들의 세금 감면을 당연히 환영했을 것이고 그만큼 우호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금 마련을 위해 통행료를 징수하고 세금도 걷지만 나름대로 원칙도 있습니다. 등반객 가운데 마오이스트 정당이 있는 국가의 국민이라면 통행료를 받지 않습니다. 인도, 스리랑카, 호주 등의 국가에 마오이스트 정당이 있다고 하더군요.

또 한번 통행료를 내고 영수증을 갖고 있으면 그 다음에는 안 내도 됩니다. 실제로 네팔에서 티벳으로 넘어가는 버스에서 마오이스트가 통행료를 요구했을 때에도 영수증을 보여줬더니 무사통과였습니다.

마오이스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매년 수천명이 마오이스트에 납치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마오이스트와 국왕이 부딪힐 때마다 정세가 불안하니 그만큼 관광수입도 줄어들고요.

그렇지만 마오이스트들은 원칙과 룰을 지키고 있고, 또 국민의 민심을 읽을 줄 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우리나라는 난데없이 청와대의 인사청탁과 전시작전통수권 회수 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꼴사납게 진실 공방도 뜨겁습니다.

서민들은 차가운 경기에 허리가 휘는데 말입니다.

유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서민들이 유류세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세수 감소를 이유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반면 버스료와 철도료 등 대중교통요금은 줄줄이 인상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최근 한국은행이 콜금리 목표치를 올려 은행에 빚진 서민들의 이자부담도 커졌습니다. 서민들은 이래저래 휘청이고 있는데 정부는 콧방귀만 끼고 있습니다. 말로는 서민경제네 민생이네 하면서 관심은 엉뚱한 곳에 가 있습니다.  

퍼주기식 포풀리즘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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