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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각국에서 ‘백신여행’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백신 접종까지 5개월에서 10개월까지 기다려야 하는 독일인들은 대기 기간을 참지 못하고 러시아로 원정을 가고 있을 정도. 이에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한 미국과 몰디브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백신을 무료로 놔주겠다’면서 속속 관광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국내 여행사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상품을 내놓는데 주저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 상황을 충분히 지켜보고 도입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고가의 비용부담부터 백신 부작용 시 책임과 대처, 격리 기간 등의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나부터 살자’ 코로나 백신 맞는 해외여행 상품 등장
지난해 11월, 인도 현지 여행사 ‘젬스 투어앤트래블즈’는 세계 최초로 ‘백신투어’ 상품을 내놨다. 이 여행사는 VVIP 고객을 데리고 미국 뉴욕에 가 접종을 받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뉴욕까지 왕복 항공편, 조식이 포함된 3박 4일 숙박과 백신 1회 투여량을 제공하는 이 상품의 가격은 17만 4999루피(한화 약 260만원)에 달했다.
노르웨이의 한 여행사도 러시아 백신 관광 상품을 최근 들고 나왔다. 스푸트니크V 백신을 개발한 러시아에 가서 관광도 하고 백신도 맞으라는 것이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한 패키지 상품은 2999유로(약 401만원)를 내면 러시아 내 관광 리조트에 22일간 머무르며 두 차례 백신을 맞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사도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를 하루 관광하고 백신을 무료로 맞고 돌아오는 관광 상품을 내놨다. 이 여행사는 “화이자·모더나·스푸트니크V·시노팜·아스트라제네카 등 모든 종류의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는 세르비아 자국 인구(700만명)의 2배 수준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도 오는 6월 1일부터 관광객 대상 백신 무료 접종을 실시한다. 알래스카 내 앵커리지, 주노, 케치칸, 페어뱅크스 공항 등 4개 공항에 입·출국하는 관광객이 그 대상이다. 알래스카주 정부는 “현재 모든 알래스카 주민이 맞을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며 백신 관광을 통해 그간 침체된 관광업을 살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선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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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계 “백신 부작용 발생시 책임질 수 없어”
문제는 또 있다. 해외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사전에 백신 종류를 확인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몰디브의 경우 지난달 중국 시노팜의 코로나19 백신 20만 회분을 받았고, 또 인도에서 위탁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만 회분을 구매 계약한 만큼 외국인 관광객에게 어떤 백신을 접종시킬지 알 수 없다. 외국인 관광객이 백신 종류를 선택할 수 있을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백신과 관광 상품을 엮으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여유 있는 세계 각국의 부유층에게 우선적으로 백신 접종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기 때문. 특히 가난한 나라에도 골고루 분배돼야 할 백신이 일부 국가들의 장사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 승인받지 않은 백신을 맞았다면 접종자로 분류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도 백신여행 상품 도입에 부정적이다. 이훈 한국관광학회 회장은 “백신여행은 가능하겠지만,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는 매우 조심스러울 것”이라면서 “어떤 나라라도 해외에서 백신을 맞은 뒤 이상 반응이나 부작용이 일어나면, 국내 의료기관만큼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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