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눈이더라

즐거운 산길 걷기 -강원도 정선군 ''하늘길''
  • 등록 2009-02-26 오후 4:12:00

    수정 2009-02-26 오후 4:12:00

[조선일보 제공] 길 떠난 겨울이 마지막 쉬어가는 곳…'하늘 길', 백운산 잔설 감상 포인트

'지금'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이마를 스치는 선득한 바람 그리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데워진 몸에서 나오는 흰 김을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겨울 산을 찾을 일이다. 이제 막바지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백운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하늘 길'은 진달래로 이름난 화절령(花折嶺·꽃 꺾어 가는 고개)을 품고 있다. 봄에 찾는 이가 많은 백운산 하늘 길은 떠나는 겨울이 아쉬운 이들에게 색다른 풍경화를 선사한다. 탄광이 많았던 산 경사면의 검은색을 바탕으로 폭신한 줄기를 자랑하는 굴참나무의 회갈색, 그 아래 무릎 높이만큼 옹기종기 솟아 있는 산죽(山竹)의 초록, 반쯤 바스러진 채 뒹구는 낙엽의 고동색, 녹지 않은 눈의 흰 빛이 산을 채색한다. 능선 따라 겹겹이 드러났다 사라지는 다섯 빛깔의 조화가 단아하다.

▲ 잠시 후면 다시 못 볼"이번 겨울"과의 조용한 이별을 위해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하늘 길"을 찾았다. 1970년대, 광부 아내들이 남편의 무사를 빌었다는 "도롱이 연못".
트레킹 전문가 윤치술씨는 "하늘 길엔 경사가 거의 없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삼대(三代)가 함께 걸을 수 있다"며 "봄 산으로 알려져 있어 겨울에 비교적 한적하다는 것도 즐거움을 더한다"고 했다. 실제로 2월 19일 오후 3시간 동안 평지에 가까운 하늘 길 10.2㎞ 코스를 걷는 사이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겨울 산길은 고요했다.

출발점은 '하이원호텔' 건너편 주차장이다. 호텔을 등지고 주차장 오른쪽에 주황색 건물이 있는데, 그 옆 가로등이 세워진 오르막 포장도로를 올라 리조트 곤돌라 아래를 지나며 하늘 길 트레킹이 시작된다. 하이원리조트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참고해 처녀치마길→박새꽃길→낙엽송길→도롱이 연못→화절령길→강원랜드호텔을 차례로 걷는 코스다. 백운산 정상을 가운데 두고 시계 방향으로 반 바퀴 도는 셈이다. 반대로 돌아도 상관없다. 윤치술씨는 오른손잡이라면 하이원호텔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걷고, 왼손잡이라면 강원랜드호텔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걷길 권했다.

"등산 용어 중에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란 말이 있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거나 기운이 빠졌을 때 곧바로 걷는 것 같지만 오른손잡이는 왼쪽(반시계 방향)으로, 왼손잡이는 오른쪽(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걷기 때문에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현상이죠. 힘센 다리 쪽의 보폭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길 잃어버릴 걱정 없는 이런 쉬운 길에서라면 평소 습관의 반대로 걸어 덜 쓰던 다리를 움직여주는 게 좋겠죠."

▲ 봄을 기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 산 정갈한 하늘이 펼쳐진다. /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일행이 모두 오른손잡이라 하이원호텔에서 출발했다. 처음 올라갈 때 10분을 제외하면 오르막이 아예 없다. 오름과 내려옴이 산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재미없다'는 푸념이 나올 것이고, 올라가는 뻐근함이 싫어 아예 산을 피했던 이들이라면 산책하듯 걷는 길에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기분이 들 법했다.

윤치술씨는 "평평한 이 길엔 그늘이 없어 햇살 따가운 봄·여름에 걷기는 쉽지 않다"며 "겨울엔 하늘이 시원하게 보여 좋은데, 대신 나무 사이로 바람이 많이 부는 단점이 있으므로 보온과 바람을 막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오르막이 없기 때문에 몸이 더워지지 않고 나무가 바람을 가려주지 않아 옷차림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상의는 얇은 셔츠, 보온용 다운재킷, 바람막이를 차례로 입고 하의는 두꺼운 등산 바지 위에 발 토시를 덧입어 바람 샐 틈을 막아주는 게 좋다. 장갑·모자를 갖추고 코까지 올리면 마스크로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면 손수건을 목에 감아 체온이 샐 틈새를 차단한다.

설렁설렁 이야기 나누며 걸어도 숨차지 않은 예쁜 하늘 길은 '화절령길' 끝 무렵에 있는 도롱이 연못에서 절정을 이뤘다. 1970년대 탄광 갱도 지반이 내려앉아 만들어진 연못인데 이 부근에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이 연못에 사는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 기원을 빌었던 곳이란다. 도롱뇽이 나타나면 남편이 안전하다고 믿었다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겨울이라 얼어붙은 연못 위에 쌓인 눈, 주변에 단정하게 잘라 놓은 나무들 뒤로 파스텔 그림처럼 아련하게 뻗어 있는 참나무 숲이 '이상한 나라' 분위기를 뿜어낸다. '노루,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샘터'라는 설명을 뒷받침하듯 연못 주변엔 구슬같이 동글동글한 야생 동물의 배설물이 낙엽 위에 뒹굴고 있었다.

화절령길 끝에서 강원랜드호텔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내리막에선 포장도로로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재미도 덜하고 무릎 관절이 약간 뻐근하기도 하다. 단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깨끗한 눈 위를 사뿐사뿐 걸어 내려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세 녹을지 모르지만, 겨울 막바지 눈 덕분에 '설의(雪衣)'를 다시 한번 갖춰 입은 하늘 길이 게으른 발걸음을 부른다.


>> 하늘 길 등산은…

평지에 가까운 길이지만 눈이 지나치게 많이 오면 발이 빠져 걷기 불편하다. 하이원리조트(1588-7789)에 반드시 날씨와 길 상태를 확인하고 출발한다. 평평한 길이 시시하다고 느껴진다면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해발 1426m)에 다녀오면 된다. 하이원호텔에서 마천봉까지는 2.8㎞(약 1시간30분), 강원랜드호텔에선 10.4㎞(약 4시간) 거리다.

자가용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나들목→제천→영월→하이원리조트·하이원호텔

대중교통으로: 3월 1일까지 '하이원 스키열차'가 서울역(오전 7시35분), 영등포역(오전 7시47분) 등에서 하이원리조트와 가까운 고한역(낮 12시8분 도착)까지 매일 한번 출발한다. 고한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는 오후 5시40분. 버스피아(www.buspia.co.kr) 등에서 판매하는 버스(왕복 약 3만원)를 이용해도 된다. 하이원리조트 홈페이지(www.high1.co.kr)→교통정보→하이원 시즌 버스에서 도시별 버스를 찾아볼 수 있다. 하늘 길 시작 지점과 가까운 하이원호텔이나 강원랜드호텔까지는 매일 30여회 운행하는 리조트 무료 순환 셔틀 버스(마운틴콘도·강원랜드호텔·벨리콘도·고한역·하이원호텔 등에 선다)를 이용하면 된다.

고한읍 근처에 식당이 모여 있다. 윤가네 한우마을(033-592-2920)은 질 좋은 쇠고기와 친절한 서비스로 주변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등심 1인분(200g) 2만5000원. 지난해 문을 열어 깔끔한 소담(033-591-6171)은 직접 짠 고추기름을 넣어 만든 얼큰한 육개장(8000원)이 시원하다. 스키 성수기인 겨울철엔 두 식당 모두 예약하고 가는 게 좋다.


※도움말=트레킹전문가 윤치술·해피트레킹(http://cafe.daum.net/htrek)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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