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
평양 물냉면 메밀국수 특유의 뚝뚝 끊기는 질감이 그리 즐겁지 않다면, 서울 성북동 '하단(下端)'의 '냉메밀칼국수(5000원)'를 권한다. 부모가 평안남도 하단 출신인 식당 여주인 윤후자(52)씨가 "냉면을 칼국수처럼 쫄깃하게 만들면 맛있겠다 싶어" 개발했다. 오돌오돌한 면발을 씹으면 구수한 메밀향이 코를 서늘하게 관통한다. 냉면과는 또 다른 쾌감이다. 살얼음 살짝 낀 육수는 맑고 투명하다. 쇠고기 육수에 잘 익은 백김치 국물과 조선간장, 식초 정도로만 간을 해 들척지근하지 않다. 설탕이나 인공조미료에 가려지지 않은 육수의 감칠맛과 백김치 국물의 개운함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경상도 출신인 윤씨의 남편은 "우리는 '밀국수(5000원)'를 더 즐겨 먹는다"고 했다. 밀가루 소면을 차가운 국물에 말아먹는, 또 다른 이북의 찬 국수다. 국물은 돼지고기 육수가 기본. 쇠고기 육수만큼 진중하지는 않으나, 대신 더 가볍고 달다. 식초와 조선간장, 다진 마늘만으로 육수 자체의 맛을 살릴 만큼만 간 한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동 올라가는 큰 길에 45도 각도로 연결된 골목을 들어가면 간판이 보인다. 제 맛을 내느라 음식이 늦게 나와 손님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만두국(6000원)'과 '만두전골(2만원·2만5000원·3만원)', '녹두지짐(2장 1만원)'도 이북 출신 집안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맛이다. (02)764-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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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앞 멸치국수
단맛의 비결은 멸치와 함께 넣는 뒤포리 덕분인 듯하다. 뒤포리는 말린 밴댕이로, 멸치보다 구수한 맛은 떨어지지만 더 달다. 여기에 어떤 뒤포리와 멸치를 선택해 어느 정도 말려 얼마나 우려야 하는지 따위의 오랜 노하우가 더해지면서 비린내를 제거한 기분 좋은 단맛을 내는 듯하다. 고명으로 얹은 김가루나 깻잎, 청양고추가 입에서 국물의 단맛과 사이 좋게 어울리면서 미각적 쾌감을 증폭시킨다.
국물과 비교해 국수는 맛이 크게 떨어진다. 많은 손님을 감당하기 위해서인지, 미리 삶아 놓았는지 국수는 퍼졌다. 차게 먹는 국수의 장점 중 하나가 쉬 붇지 않아 차진 면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아쉽다. '도토리묵 국수(3500원)'도 괜찮다. 찬 것과 뜨거운 것 두 가지가 있다. (02)953-1095
◆테이스티 블루바드
서울 신사동 '테이스티 블루바드(Tasty Boulevard)'의 '햇빛에 말린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 바질로 맛을 낸 차가운 링귀니(2만1000원)'를 먹는다는 건 관능적 경험이다. 한국의 칼국수처럼 생긴 링귀니가 마치 애인 품에 안기듯 혀와 잇몸에 찰싹 붙는다. 하지만 뜨거운 파스타(pasta·이탈리아 국수류의 총칭)처럼 엉기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불처럼 뜨겁고 농염한 사랑 보다는, 풋풋하고 설레는 첫사랑 같은 맛이다.
◆영일분식
'칼비빔(4500원)'은 차가운 칼국수를 매콤하게 버무린, 일종의 비빔국수다. 뜨거운 국물과 어우러져 '부드럽고 푸근하다'는 인상을 주던 칼국수 면발이지만, 물에 씻어 차갑게 식히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매끄럽고 탱탱한 면발은 과연 칼국수 맞나 싶다. 일반 비빔국수는 고추장이 들어간 양념에 버무리지만, 이 집에서는 칼국수 국물에 타는 고추양념(다대기)에 버무린다. 들척지근하지 않고, 너무 맵지 않게 칼칼하다. 워낙 양이 많아서 성인 남성이 먹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여기에 납작 동그랗게 썬 오이와 상추를 국수가 보이지 않을 만큼 올리고 참깨를 듬뿍 뿌려 낸다.
'칼국수(4000원)'와 '만두국(4500원)', 칼국수에 만두를 얹은 '칼만두(4500원)'로 매스컴에 여러 차례 소개된 집이다. 조개와 애호박, 김, 달걀을 푼 국물이 시원하지만 걸쭉한 편이다. '분식'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국수류와 만두 외에 다른 '분식스런' 음식은 없다. 문래동 기계·금속공장 밀집지역에 꼭 박혀 있어서 찾기가 수월치 않다. 내비게이션에 주소(서울 영등포구 문래동4가 8-26)를 치고 찾는 편이 편할 듯하다. 전화로 물으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02)2636-9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