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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좋은데 특허가 나쁘다니 매우 역설적인 말이다. 지난달 31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만난 법무법인 민츠레빈의 김공식 파트너 변호사(47)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한국 현실이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손으로 꼽히는 특허소송 전문가다. 한국 최대 법무법인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특허를 담당하는 변리사로 5년간 일하다 미국 뉴햄프셔대학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후 미국에서 국제적인 특허소송을 담당하는 전문 변호사로 변신했다. 김 변호사가 속해 있는 민츠레빈은 애플과 삼성, LG, 소니, 모토로라 등 세계적인 회사를 상대로 한 특허소송을 대리해 각 소송당 수억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낸 보스턴의 메이저 로펌(법무법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릴게요. 한국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가 발광다이오드(LED) 헤드라이트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봅시다. 그 회사는 특허를 이렇게 낼 겁니다. 가로 몇센치 세로 몇센치에 역삼각형 모양 어쩌고 하면서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할 겁니다. 자신의 기술을 지키려고 말이죠. 하지만 이런 특허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습니다. 기술을 조금만 변형하면 특허를 피해 갈 수 있거든요. 경쟁사는 금방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핵심적 아이디어가 아닌 구구절절한 기술적 특성으로 특허를 출원하면 오히려 기술을 지킬 수 없는 역설이 생긴다는 게 김 변호사 지적이다.
특허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말은 ‘특허괴물’(patent troll)이 되라는 말과 같다. 특허괴물은 자신 사업보다는 주로 특허소송을 통해 수익을 내는 회사를 말한다.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아주 악의적이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특허괴물이라는 표현 때문에 특허소송이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 것 같은데 그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허산업’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누가 알아서 제값을 내겠어요. 소송을 통해서만 자신 아이디어의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벤처캐피털은 투자할 회사를 선정할 때 투자 후보 기업이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어떤 특허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보죠. 특허를 몇개 가졌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두개의 특허라도 그 특허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주로 따져봅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비해서도 특허에 대한 개념과 대응이 떨어진다고 김 변호사는 꼬집었다. “최근 중국 전자·통신제품 제조사 화웨이(華爲)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한 것처럼 요즘 중국 기업들은 특허소송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특허 부문에서 여전히 방어하는 데 급급하지만 중국은 특허 부분에서 급성장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는 또 최근에는 한국 자동차 부품회사들까지 미국 특허소송의 먹잇감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요즘 자동차에 전자장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니까 특허소송 대상이 전자업체에서 자동차로 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한국 자동차부품업체들이 표적이 되고 있어요. ‘한국 자동차부품업체는 특허 침해 경고장만 보내도 합의금을 잘 주는 봉이다’라는 식으로 소문이 났을 정도니까요. 한국도 이제는 특허 부문에서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