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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961년 8월13일 독일을 동서로 가르는 베를린장벽이 들어선다. 헤드윅은 그 장벽이다.” 그렇다. 이것은 선언이다. 헤드윅을 향한, 헤드윅을 위한 외침이다. 그런데 왜 이런 선언과 외침이 필요한가. 무대를 뒤흔드는 록음악을 울리며 등장한 헤드윅은 화려했다. 허나 이번엔 소개가 거슬린다. 동독 출신 실패한 트랜스젠더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실패한’ 트랜스젠더라니.
돌아온 ‘헤드윅’은 여전히 강렬했다. 슬픈 가발을 쓰고 진한 화장으로 자신을 철저히 가린 채 우는 것보단 웃는 게 쉽지 않냐고 고백하듯 다시 묻는다. 그가 선 이곳은 호텔 리버뷰다. 등급은 별 반개.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이 묵었다는 곳이다. 미국 뉴욕 웨스트 빌리지 허드슨 강가의 낡은 건물, 이곳을 배경으로 헤드윅의 진한 모놀로그가 이어질 참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앵그리인치(Angry Inch)’와 함께 광란의 록공연을 펼쳐낸다. 헤드윅의 흔들리는 눈빛, 손짓 한 번에 관객은 열광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흔들어놓는가.
7년간 1300회 공연신화
뮤지컬 남자배우들을 양산한 사관학교로도 이름을 높였다. 초연에 선발된 배우가 오만석, 김다현, 송용진, 조승우. ‘셜록 홈즈’ 송용진이 ‘헤드윅’ 출연 최다기록을 가지고 있다. 최근 ‘서편제’ ‘M. 버터플라이’ ‘라카지’ 등에 연달아 캐스팅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다현의 출발도 헤드윅이다. 이들 외에도 송창의, 윤도현, 김동완, 조정석 등이 헤드윅 계보의 존재이유가 됐다. 이번 시즌에 낙점된 배우는 오만석과 박건형이다. 오만석은 2005년 초연 이후 7년 만의 복귀로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슬픈 가발의 록크롤을 이해하라
베를린장벽이 갈라놓은 동독 베를린에서 한셀 슈미터는 “길바닥은 나의 집, 나의 집은 길바닥”으로 여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 자란 후엔 ‘칸트 철학이 록큰롤에 미친 영향’이란 논문을 쓰고 “할 일이 없어서 라디오에 머리를 박고 미국 팝송을 듣기만” 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한 미국 병사의 청혼이다. 여자가 되는 조건이었다. 어머니의 이름 헤드윅으로 개명하고 성전환수술을 감행한다. 하지만 싸구려 수술이 잘못돼 그만 1인치 살덩이를 남기게 된다. ‘앵그리인치(화난 1인치)’로 실패한 트랜스젠더가 된 거다. 정체불명의 성정체성으로 버림 받고 배신의 상처를 품고 살지만 사랑에 대한 갈망을 포기할 순 없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이 바뀌었다. ‘스프링어웨이크닝’ ‘씨 왓 아이 워너 씨’ 등에서 선 굵은 문제작을 만들어왔던 연출가 김민정이다. 2005년 이후 이지나·김달중 연출만이 전담해왔던 터라 ‘헤드윅’ 사상 가장 큰 변화라 봐도 좋다. 무대의 군더더기를 벗겨낸 그 만큼 배우들의 움직임에도 선택과 집중이 생겼다.
공연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헤드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감정에 몰입하며 록음악을 한껏 즐긴다. 그리고 눈을 가렸던 편견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돌아나오면 된다. 지금껏 이어온 신화가 그렇게 하라 이른다. 10월21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