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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잔잔한 피아노곡에 잠시 현혹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취조실이다. 한 남자가 눈을 가린 안대를 벗는다. 400편의 ‘이야기’를 압수당한 그 남자, 카투리안은 작가다. 취조실에 들어선 두 명의 형사에게 비굴할 정도로 협조하는 중이다. 아는 것을 다 말하겠다고 한다. 다만 카투리안을 예민하게 만드는 한 가지가 있다. 형 마이클이다. 옆 취조실에 형이 잡혀와 있다는 사실이 그를 자극한다. 마이클은 어릴 때 부모에게 받은 고문과 충격으로 인해 지적장애를 안고 있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다. 형제가 왜 잡혀 와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거다. 두 형사가 집착하는 건 작가의 ‘이야기’일 뿐. 3주 전 벌어진 아동 살인사건이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갔다는 것만이 드러난 논리다. 아이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이야기’의 상징성만 집요하게 부각한다.
자칫 ‘이야기’란 단어에서 풍길 수 있는 동화적 이미지는 접어두는 것이 좋다. 꿈과 환상, 희망과 즐거움 이런 것은 여기 없다. 동화의 형상을 비틀어 전혀 다른 스토리로 만드는 작품들은 꽤 있다. 하지만 그 중 순서를 잡자면 연극 ‘필로우맨’은 가장 잔인한 상흔을 얹은 작품이라 할 만하다. 폭력적이지만 유머를 잃지 않은, 위트가 있지만 참담한 비극. 굳이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잔혹극’ 그 자체다.
클라이맥스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설정도 사실 없다. 빽빽한 복선과 상상력만으로 쌓아올린 치밀한 구조 속에 그들은 그저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내용을 꺼내 분석하고 ‘이야기’들이 어떤 처절한 현실을 가져왔는지를 따질 뿐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가 찾고자 한 진실에 각기 접근해간다.
400편 ‘이야기’ 중 그나마 평이한 것이 있다면 ‘필로우맨(Pillow Man)’이다. 3m에 달하는 몸이 온통 분홍 베개들로 만들어져 있는 사람. 목숨을 버리고 싶은 누군가의 자살을 부드럽게 도와주는 역할. 그러나 ‘필로우’, 베개 역시 작품을 풀어가는 결정적 매개였다. 카투리안이 형을 구하기 위해 부모를 살해한 도구가 베개였고, 자신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형을 살인범이라 확신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그를 살해하는 역설적 도구 역시 베개다.
이 복합적 요소들로 이룬 ‘이야기’와 현실의 결합은 탁월하다. 형 마이클의 캐릭터도 허를 찌른다. 그가 갖지 못한 것은 학습능력일 뿐 기억력과 응용력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객석은 상당 부분 마이클의 입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그의 귀로 해결점을 찾는다. 암시와 검증이 꼬리를 문 정교한 틀짜기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극의 강점이다.
젊은 천재작가로 인정받아온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마틴 맥도너(42)가 썼다. 기독교적 세계관, 자전적 이야기, 현실의 거대한 모순, 빗나간 윤리의식, 순수를 향한 갈망 등을 응축시켜 대단한 밀도감을 심었다. 초연은 2007년 박근형 연출로 올렸다. 이번엔 변정주가 나섰다. ‘레인맨’ ‘쉬어 매드니스’ ‘날 보러와요’ 등을 연출하며 인간 내면의 정서를 날카롭게 꿰뚫었던 연출가다. 그가 세운 김준원, 손종학, 이현철, 조운 등 네 배우의 열연은 기대 이상이다. 강약과 속도를 제대로 조절할 수 있는 연기력으로 정점을 찍었다. 9월15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44-4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