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코스닥은 꿈의 그라운드였다. 선수도 관중도 그 안에서 함께 열광하고 흥분하고 환호하고 아쉬워했다. 월드컵이 '사람들이 모여서 공을 차며 노는 모임' 그 이상인 것처럼 코스닥도 '벤처기업들의 주식을 사고 파는 시장'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매 순간마다 사건마다 깊은 사연과 의미를 담고 있었고 많은 스타들이 땀과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 안에는 밤새워 기계를 뜯고 분석하면서 흘리던 구슬땀도 있었지만,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주가를 바라보며 흘리는 '식은 땀'도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목표를 성취한 후에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 있었던가 하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채 좌절감을 씹으며 흘린 아쉬움의 눈물도 적지 않았다.
◇ 메디슨과 골드뱅크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은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들과 함께 초음파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메디슨을 설립한 뒤 줄곧 벤처 1세대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코스닥 열풍이 불던 1998년부터 ‘메디슨 연방’을 꿈꾸며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적극적인 벤처투자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한 때 50여 개 관계사를 거느렸지만 주식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메디슨 이민화 회장이 벤처업계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힘을 키운 '주류'였다면 김진호 골드뱅크 사장은 '비주류'를 대표하던 인물이다.
김 전 사장은 코스닥 열풍이 불기 시작한 초기 업계의 기린아로 떠올랐지만 여러가지 머니게임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미지를 구겼다. 98년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발상으로 골드뱅크가 코스닥 시장에 등록하기도 전에 장외에서 일찌감치 주식 세일즈를 시작하기도 했다.
김씨는 99년 4월 골드뱅크 대주주인 전 중앙종금 회장 김석기씨와 공모해 골드뱅크가 해외전환사채를 발행, 외자를 유치한 것처럼 가장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해 66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02년말에는 비전텔레콤을 인수하면서 다시 코스닥시장에 등장, 아이빌소프트, 한신코퍼레이션 등 코스닥 등록 기업을 잇따라 인수했지만 1년여만에 회사 자금을 유용하거나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고 다시 잠적했다.
2005년에는 벤처 1세대들의 분식회계 사건이 불거지면서 또 한 번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낸 터보테크 장흥순 사장과 '장관의 아들'로 촉망받는 벤처기업인의 한 명이었던 로커스 김형순 사장이 수백억원대의 분식회계 사실을 숨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던 것.
이들로 인해 '시기를 잘못 만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지 벤처정신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벤처 1세대들은 또 한번 고개를 숙여야 했다.
◇ 대박의 꿈 새롬기술
코스닥 대박의 대명사로 불리던 '새롬기술'이라는 회사는 오상수와 홍기태라는 화제의 인물을 낳았다. 새롬기술은 컴퓨터통신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벤처기업으로 인터넷 전화 '다이얼패드'를 주력무기로 시가총액 5조원을 넘보던 대표적인 벤처기업이다. 오상수 씨는 새롬기술의 창업자로 2002년까지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0년에는 유상증자로 무려 3700억원이라는 거금을 끌어모았다.
치솟는 주가와 더불어 성공한 벤처기업인의 대명사로 꼽히던 오 전사장도 대규모 유상증자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한 죄로 교도소 신세를 지고 말았다. 오상수 전 사장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전 사장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새롬기술과 네이버의 합병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당시 잘나가던 코스닥 대장주였던 새롬기술은 일개 장외 인터넷 업체에 불과하던 네이버에 240억원을 투자했는데 그 돈은 현재 코스닥 황제주 NHN을 일구는 든든한 기반이 됐다. 두 기업의 스토리는 부흥과 몰락을 거듭해온 코스닥의 부침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2002년 새롬기술 주식을 장내에서 사들여 적대적 M&A에 성공한 홍기태 현 새롬기술 사장은 코스닥 열풍 과정에서 가장 큰 돈을 벌어들인 개인투자자로 꼽힌다.
삼성전기 자금부 출신으로 도이체방크의 삼성그룹 담당심사역과 자금부장을 거치며 금융전문가로 거듭난 인물로 알려졌고, 특히 새롬기술과 엔씨소프트, 한글과컴퓨터 등의 주식을 코스닥 상장 전에 액면가 수준에 사서 갖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현금화해서 수천억원의 재산을 일궜다. 한때는 보유재산이 1조원 가량 된다고 해서 '1조원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벤처기업가가 신흥부자 계층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벤처기업 사장들이 유명 연예인들과 결혼하기도 했다. 한글과컴퓨터의 창업자인 이찬진 현 드림위즈 사장은 96년 톱탤런트 김희애씨와 신접살림을 꾸렸고 이재웅 다음커뮤니테이션 사장은 2001년 황현정 아나운서와 화촉을 밝혔다.
◇ 맨손으로 일군 신기루..리타워텍·모디아
공장 하나 없이 수천억대의 자산을 일궈내는 그들의 '실력'에 세상은 깜짝 놀랐지만 그들이 세운 신기루는 결국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변했다. 그리고 코스닥 시장은 그들로 인한 후유증을 심하게 앓아야 했다.
특히 리타워텍을 코스닥 황제주 자리로 끌어올린 최유신 리타워그룹 회장은 소외된 종목을 인수해서 시장이 원하는 테마로 포장해 주가를 띄우는 이른바 A&D 방식을 코스닥 시장에 처음으로 도입한 장본인이다.
하버드대 출신인 그는 보일러 업체 파워텍을 인수해서 주가를 띄워놓고는 현금대신 주식을 주고 장외 벤처기업을 인수해서 기업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식으로 리타워텍 주식값을 180배나 올려놨다.
리타워텍 사건 이후 코스닥에서는 간판만 새로 바꿔서 주가를 띄우는 식의 A&D 모델이 주가조작의 단골메뉴로 악용됐다.
벤처 1세대들이 차례로 몰락한 후인 2003년에는 모디아라는 회사가 또 한 번 벤처사기극의 대명사가 됐다. 모디아는 2001년 코스닥 시장에 올라온 후 '모바일SI'라는 독특한 테마로 한 때 엔씨소프트와 함께 코스닥 황제주 자리를 놓고 다투기도 했다.
창업주인 김도현 모디아 전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했다가 전문 노름꾼으로 전락,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음독자살까지 기도했다가 모바일 SI라는 시장을 발견, 벤처창업 신화를 일궈낸 인생역전 스토리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주가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2004년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 여성· 교수· 의사.."벤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여성 벤처기업인들도 코스닥에서 화제가 됐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2003년 5월, 온라인 게임업체 웹젠이 코스닥에 등록되면서 화제로 떠오른 여성포털사이트 마이클럽닷컴의 이수영 대표이사다.
그녀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발레리나 출신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고 웹젠을 떠난 후에도 미국 장애인 검사와의 결혼 등 화제를 몰고 다니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사장은 3D 게임 뮤를 통해 무명이던 웹젠을 세계적인 게임업체로 등극시켰으나 2002년 경영진과의 갈등, 주주들과의 분쟁 끝에 대표에서 물러났다.
그 후 엔터테인먼트 포털업체 이젠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면서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 사장은 코스닥 업체인 아이콜스를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정복임 케너텍 대표는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1997년 9월 케너텍을 차려 2003년 코스닥에 등록시켰다.
케너텍은 임목 폐기물과 볏짚·왕겨 등을 대체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는 구역(區域) 바이오 열병합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최초로 열병합 발전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판매하는 민간 구역전기사업자 1호 면허를 따내기도 했다.
벤처기업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던 교수와 의사들도 코스닥시장에 속속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의사나 교수 출신 CEO는 서정선 마크로젠 대표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이 유일했지만 바이오 열풍을 타고 많은 의사들이 코스닥 문을 두드렸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나노급 초정밀 기계공학기술로 LCD 검사장비업체 SNU프리시젼을 창업했고,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치료용 유전자를 인체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유전자 전달체 관련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바이로메드를 설립했고 메디포스트는 마크로젠 이후 두번째로 의사가 창업한 벤처기업으로 코스닥에 상장됐다.
메디포스트 지분 9.3%를 보유한 양윤선 사장은 삼성서울병원 의사 출신이다.
서울이동통신을 통한 우회상장 방식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항암면역세포 치료기술업체 이노셀의 정현진 대표도 서울대병원 출신의 전직 의사다.
서울대 실험실 벤처 1호 'SNU프리시젼'을 설립한 박희재 교수도 코스닥 상장으로 수백억원대의 재산가가 됐다.
◇ 돈은 이렇게 버는 거야..1000억대 갑부들 속출
핸드폰 키패드를 만드는 업체인 유일전자의 양윤홍 대표는 언론에 별로 노출되지 않은 조용한 스타일이었지만 벌어들인 수입으로보면 가장 알짜배기 장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코스닥 CEO들은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운 주식의 가치로 재산순위가 매겨지지만 실제 현금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양윤홍 대표는 지난해 동국제강에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하면서 880억원의 현찰을 벌어 들였다.
양 대표는 2001년 코스닥 등록 당시 지분을 55% 이상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동안 기관투자가들에게 블록 세일로 지분을 꾸준히 넘겨왔던 것을 감안하면 양대표가 현금화한 지분은 10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양 대표는 코스닥 시장을 통해 1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벌어들인 유일한 경영인으로 꼽힌다.
권성문 KTB네트워크 회장 역시 코스닥으로 많은 현금을 벌어들인 행운아 중 한명이다. 권성문 회장은 지난 2001년 개인자격으로 투자했던 옥션 주식 260만250주를 2만4000원에 미국 이베이에 장외매각해 624억원을 벌었다. 권 회장이 옥션 주식을 매입한 것은 99년 3월 옥션이 설립될 당시로 매입원가는 주당 538원이었다.
권 회장은 지난해에는 역시 개인적으로 투자했던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를 미국 몬스터닷컴에 매각하면서 약 630억원의 매각차익을 거뒀다.
벌어들인 현금으로만 보면 권성문 회장이 벤처열풍의 가장 큰 수혜자로 보이지만 벤처 투자 귀재 소리를 듣던 권 회장이 닷컴기업 투자에 재미만 본 것은 아니다. 2003년에는 포털 업체인 인티즌에 52억여원을 투자했다가 투자금액 대부분을 날리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도 코스닥으로 한 몫 잡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을 추징금으로 납부해야 할 형편이지만 아들인 노재헌씨는 텔코웨어 주식으로 1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만들었다.
텔코웨어는 노 전대통령 아들 재헌씨와 처조카인 금한태씨가 각각 9.4%와 25.74% 지분을 보유, 최대주주로 있는 무선인터넷솔루션 업체다.
주로 SK텔레콤과의 거래를 통해 회사 규모를 키웠다는 점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인 최태원 SK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 연예인 전성시대
엔터테인먼트 열풍이 코스닥을 휩쓸면서 연예인들이 코스닥 시장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2005년 이전만해도 연예인이 직접 경영에 나선 케이스는 이수만 에스엠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주병진 좋은 사람들 대표 정도였다.
이들은 '연예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을 뿐 이미 사업가로 변신한 경영인이었지만 한류열풍을 업고 코스닥에 얼굴을 내민 연예인들은 연예인으로서의 상품가치를 주식값으로 평가받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케이스였다.
대표적인 한류스타 배용준이 오토윈테크를 통해 코스닥 시장 우회상장하면서 단숨에 1000억원이 넘는 주식평가액을 거둬들였고, 장동건도 자신을 간판으로 삼은 소속사를 코스닥에 우회상장시켰다.
영화배우 하지원과 김상우, 보아 등도 자신과 관련된 코스닥 회사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화제가 됐다.
특히 영화배우 하지원 씨는 자신의 소속사와 관계를 맺고 있던 스펙트럼DVD라는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가 단기간에 처분하면서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