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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유난스러운 건 없었다. 미술품경매에 나선 여느 작품들처럼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을 뿐. 그렇게 시작가 5억원이 불려졌고 5000만원씩 호가를 높여갔다. 결국 경매사가 외친 13억원에 단 하나 남은 응찰자의 패들이 들렸다. 13억원에 낙찰. 추정가 6억∼12억원을 단숨에 뛰어넘은 거다.
이렇게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쓴 또 한 점의 유묵이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완전히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인심조석변산색고금동’(人心朝夕變山色古今同·1910·33.8×137.2㎝)이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를 비정한 처형날을 받아둔 안 의사가 1910년 뤼순감옥에서 쓴 옥중 유묵. 일본땅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오는 데 114년이 걸렸다.
‘인심조석변산색고금동’이 27일 서울 강남구 서울옥션 분더숍에서 열린 ‘서울옥션 제177회 미술품경매’에서 새주인을 만났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의 색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라는 뜻을 가진 이 오언절구는 안 의사가 200여점으로 남긴 세상을 향한 묵직한 소리 중 하나였다. 수시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나약한 사람마음을 나무라면서도 한결같은 산색에 자신의 마음을 빗대고 다스렸으니까.
이례적 낙찰자 공개…독립유공자 후손 기업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 기업은 독립운동가 곽한소(1882∼1927)의 손자인 곽노권(1938∼2023) 회장이 설립한 회사다. 서울옥션을 통해 한미반도체는 “창업자인 곽노권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안중근 의사 유묵 환수에 동참했다”는 뜻을 전했다. 지난해 12월 별세한 곽 회장은 생전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자부심과 애국정신을 강조했다고 한다. 곽한소 선생의 기록물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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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묵 대부분은 안 의사에 대한 형 집행 뒤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일부가 후대에 의해 국내에 기증되거나 경매를 통해 돌아왔는데. 그중 지난해 12월 ‘서울옥션 제176회 미술품경매’에 나왔던 ‘용호지웅세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豈作蚓猫之態·1910·34×135㎝)가 19억 5000만원에 팔리면서 현재까지 안 의사 유묵 중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3·1절을 사흘 앞두고 열린 이번 경매에선 나라 밖에서 떠돌고 있는 국외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의미를 보탰는데. 안 의사의 유묵과 함께 경매에 나선 시산 유운홍(1797∼1859?)의 ‘서원아집도’(연도미상·324×141.8㎝) 역시 낙찰작품 리스트에 들었다. 1억 3500만원을 부른 응찰자의 품에 안기며 먼 타국 캐나다를 떠나 국내에 환수된다. 나머지 한 점인, 일본에서 출품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시고, 묵란도’(1846 추정·34.5×26.5㎝, 34.5×25.4㎝)는 아쉽게 유찰됐다.
이번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을 예고한 작품은 96점. 이 중 8점이 출품을 취소한 채, 거래한 88점 중 61점이 팔렸다. 낙찰률은 69.32%, 낙찰총액은 54억 938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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