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고위 공직자가 한 말이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진지한 토론 자리도 아니었고, 평소 농담 잘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그저 한번 웃자고 한 얘기다. 그런데, 그저 한번 웃자는 얘기를 듣고도 별로 웃음이 나질 않는다.
다들 내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가계부채라는데….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감히 헤아릴 순 없지만, 도통 답이 보이지 않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에 대한 부담일 게다. 그 고위 공직자는 “요즘 일이 너무 힘들거나 우울하면 과천 경마장에 간다”며 이 우스갯소리를 꺼냈다.
우문현답일까. 따지고 보니 이보다 명쾌한 답이 또 있을까 싶다. 빚이 많으면 줄이면 되고, 정책의 툴(tool)은 빚을 내는 도구(ATM)을 없애는 것이라. (허허~)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워도 유분수지 고위 공직자의 그냥 한번 웃자고 한 얘기치고는 고약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이제 겨우 6~7년이 흘렀을 뿐인데, 또다시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현실인 것을 보니, 이 질긴 악연의 고리는 그 고위 공직자의 말처럼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르겠다.
빚을 내는 도구(tool)가 신용(credit)이다. 보통 빚을 많이 낼 줄 아는 사람은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신용이 많이 쌓이면 레버리지를 크게 일으킬 수 있고 그만큼 빠르게 돈을 불릴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신용이 무너지면 레버리지는 신기루에 불과하고 그 사람은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정치영역에선 신용이 더 중요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빌리고 갚는 곳이 정치권이다. 협찬 인생만 살았다는 어눌하기 짝이 없는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 당당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짱을 먹는 것이 정치의 힘이다. 앞으로 1년여 정도는 숨가쁜 정치일정이 놓여 있다. 이 정치 일정이 끝나기 전에 우리의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4호선 경마공원역까지는 11개 정거장이 있다. 일땡이라 좋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소요시간은 약 33분이란다. 삼땡이라 더 좋다. 이제 좀 끗발이 좀 보이시는가. 경마장에 가면 답이 보인다니, 의원님들의 가계부채 안터트리기 묘수풀이나 기대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