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반도체 업계에선 이 회사의 직원이 지구밖 생명체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고 한다. 외계인이 아니고선 도저히 나오기 힘든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이다 보니 놀라움과 부러움이 뒤섞인 평가가 나왔던 걸로 보인다. 주인공은 바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던 인텔이다.
|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도 인텔의 화려한 이력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PC와 노트북마다 이 슬로건이 붙어 있던 스티커는 전자제품에 인텔의 반도체가 들어가 있다는 의미로, 일종의 품질 보증서나 다름 없었다.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윈텔(윈도우+인텔) 동맹’을 맺고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PC와 서버용 CPU 시장의 황제로 군림해왔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24년간 세계 반도체기업 매출 1위를 지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인텔 제국의 몰락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지난 2006년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폴 오텔리니 인텔 CEO를 찾아가 휴대용 PC용 반도체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인텔이 내놓은 답변은 ‘거절’. 휴대용 PC 생산 규모가 작아 이윤을 크게 남기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텔리니 CEO가 퇴짜를 놓은 기기는 모바일 혁명을 이끈 ‘아이폰’이다. 모바일로 변화하는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도 뼈 아팠지만, 더 치명적인 실수도 저질렀다. 2005년부터 2021년까지 영업·마케팅·재무통 출신들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기술기업(IT)의 심장과 같은 연구개발(R&D)을 초토화시키는 자해 행위를 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투자비를 줄이고, 인력을 축소한 결과는 처참했다. 서버용 CPU 시장에서 한때 90%가 넘던 시장 점유율은 후발 주자인 AMD에 추격당하며 70%대로 미끄러졌고, 인공지능(AI)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선 엔비디아에 밀려 존재감을 잃었다. 1등이라는 자만심에 도취해 ‘혁신’을 게을리한 결과다.
특히 반도체 업계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인텔의 몰락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실적에 따라 실물경기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구조인 만큼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인텔의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혁신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