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영어못해도 좋은 변호사 될수 있어요"

  • 등록 2006-08-30 오후 12:45:08

    수정 2006-08-30 오후 2:35:53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살면 영어가 금방금방 늘 것이라는 오해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작년 7월 뉴욕에 온 기자가 12월에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이제 영어는 꽉 잡았겠네" "CNN은 뭐 거저 들리지?" 이런 류였다.

뉴욕 뉴저지 인근에서 단 하루만 생활해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오해인지 알 수 있다. 특히 기자가 살고 있는 뉴저지 주 버겐 카운티 포트리는 당최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어 영어를 한 마디도 쓸 필요가 없다.

집 밖으로 나가면 온통 한국 가게가 널려 있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대부분 까만머리 한국인이다. 24시간 한국어 방송을 하는 채널도 두 개나 된다.

CNN 운운 하는 사람들에게 쓴 웃음만 지었던 기자는 영어 문제에 관한 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미국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 문제는 기자 뿐 아니라 뉴욕 일대에서 거주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미국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해서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을 수 없다.

오히려 전문직이고 고학력일수록 영어 문제로 어려움을 더 많이 겪는다. 언어란 편안하게 얘기하는 대화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한 주제를 놓고 제대로 된 토론을 벌이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두꺼운 책을 한국 소설책 읽듯 술술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에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말`로 먹고 사는 변호사조차 영어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다소 나아졌다.

한국에서 영어로 석사 학위까지 받고 미국 변호사가 된 최윤정씨(사진)는 현지인 수준의 영어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국 생활에서도 가장 큰 장벽이 영어였다고 말했다.

89학번인 최씨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도 받았다.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스레 생각했다. 그러나 까마득한 79학번 선배가 시간강사로 어려운 생활을 지속하는 것을 보고 법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법고시 공부를 6개월 했는데 제가 한자를 너무 모르다보니 좀 힘들더라구요. 옥편 찾다가 시간 다 보내겠다 싶어서 로스쿨 공부를 시작했어요"

최씨가 미국 변호사를 준비하던 1990년대 중반은 로스쿨 입학 시험(LSAT)도 미국에 와서 봐야 하던 시절이었다. "보스턴에 와서 로스쿨 예비 학교에 6개월 정도 다녔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IMF가 터지고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이 있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다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2000년 브루클린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죠."

영어는 자신있다고 생각한 최씨에게 로스쿨 수업은 의외의 어려움을 안겨줬다. "법률 용어에는 그 사회의 체계, 문화, 생활방식 등 모든 부분이 녹아 있잖아요. 이런 부분을 간과한 거죠. 설마 영어 때문에 고민하랴 생각했는데 첫 시간부터 숨이 콱콱 막히는 거에요. 급우들은 다 알아듣는 간단한 법률 용어를 혼자 못 알아듣는 일들이 자꾸 발생하니까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더라구요."

그녀는 다시 고3이 됐다는 생각 하에 공부에만 매진하기로 했다. 영어로 뜻을 이해하건 못하건 무조건 외우는 고전적인 방식을 택했다고. 결국 2003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현재 뉴저지에서 부동산, 이민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사무실을 같이 운영하는 동료 변호사 두 명이 모두 미국인이다보니 저도 다른 한국인 변호사에 비해서는 한국인 고객들이 적고 미국인 고객들이 더 많아요. 아무래도 다른 미국인 변호사에 비해 영어 경쟁력은 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나 그녀는 조만간 개인 사무실을 낼 정도로 변호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비결은 바로 한국적 사고방식과 태도에 있었다고 했다. "미국 변호사들은 왠만해선 고객들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요. 오후 5시가 넘으면 사무실 전화로도 연락이 닿기가 힘들죠. 사실 미국에서 일 관계로 만나는 사람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는 예는 극히 드물잖아요. 하지만 저는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고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고객의 전화를 받았어요."

이렇게 하니까 미국인 고객들의 호응이 남달랐다고.. "한국적 사고방식이 남아있는 교포 분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별로 고마워하지 않으실 때도 있는데 미국인들은 `아 이 변호사는 언제 어디서든 연락이 잘 된다`는 생각을 갖고 많이 좋아하더군요. 변호사와 만날 때는 결과도 결과지만 일이 어디까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계속 알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잖아요. 고객에게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한테 관심 많이 가져주는 변호사가 최고거든요. 비서가 아니라 저와 바로바로 연락이 되니까 미국인 고객들은 한 번 인연을 맺고 나면 꼭 다른 고객들을 소개시켜 주더라구요."

미국에 오기 전 최씨는 영어 과외로 꽤 이름을 날렸다. 영어 과외로 번 돈으로 당시 강남에 소형 아파트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까지 모아 유학 비용을 조달했다고.

"가끔 어머니는 제게 그때 아파트를 사 놨으면 지금 평생 놀고먹을 돈이 모였을 거라고, 왜 미국에 갔냐는 말씀도 하시는데.(웃음) 전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특히 부동산 문제로 고객을 대하다 보면 이혼, 침대 속 문제 등을 비롯한 시시콜콜한 가정사를 다 접하거든요. 가끔은 내가 변호사인가 정신과 의사인가란 생각도 들지만 일이 잘 해결되고 나서 고객이 고맙다고 가져다주는 비누 한 상자에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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