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횡단 중 발생한 노인 교통사고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 내 실버존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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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횡단보도 건너기는 오늘도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데일리가 지난 6일 찾은 노인들의 대표적인 쉼터인 서울 탑골공원 앞에는 8차선 도로가 위치해 있다. 차량 통행도 빈번한 구역이다. 이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보행 신호는 약 42초로 정상적인 일반인이 건너기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거동이 다소 불편한 노인들의 경우 아슬아슬한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도화동에 거주 중인 김모(81·여)씨는 웬만하면 횡단보도보다는 지하철 지하통로를 이용해 길을 건넌다고 한다.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빨간불로 바뀌는 경험을 수차례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면 빨간불로 바뀔까봐 항상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몸은 좀 힘들더라도 마음 편하게 지하철 통로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팡이를 손에 꼭 쥔 강모(84·여)씨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병원에 가야해서 어렵게 나왔는데 초록불이 너무 짧아 중간에서 꼭 쉬고 건너온다. 횡단보도를 건너느라고 시간이 배로 든다”며 가픈 숨을 몰아쉬었다.
실버존, 스쿨존 10분의 1 수준...“노인 친화적 교통 체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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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실버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는 170개의 실버존이 있는데, 어린이 보호구역(1741개)과 비교했을 때는 10분의 1 수준이다. 노인들의 왕래가 많은 탑골공원 인근은 실버존으로 지정조차 되지 않았다. 종로구 관내 실버존은 락희거리 등 5개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65세 이상 노인들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타 연령대 대비 가장 높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령대별 교통사고 사망자 현황에서 65세 이상 노인 사망자는 709명으로 전체(2916명)의 24.3%로 나타났다. 이는 연령대별 가장 높은 수치다. 해당 기간 11세~20세 이하 사망자는 83명, 10세 이하 어린이 사망자는 2명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노인 교통사고 사망 비율이 어린이 사망 비율보다 훨씬 높은 만큼 실버존을 보다 늘려 노인 친화적인 교통 체계로의 개편을 주장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앞으로 고령 사회가 다가오며 미래 교통 정책의 성패는 고령자들의 교통 안전에 달렸다”며 “실버존을 질적, 양적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또한 “노인들은 기본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 조건이 아동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며 “고령 친화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실버존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