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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설득 나선 듯
한·미 안보사령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5월4일 이후 77일 만이다. 같은 날 양국의 외교수장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비핵화 후속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뉴욕에서 회동했다. 지난 8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지 불과 12일 만이다. 양국 외교안보라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대북(對北) 전략 조율에 나선 셈이다. 지지부진한 북·미 후속협상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싱가포르 렉처(강연)’를 통해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작금의 비핵화 협상 소강 국면에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6~7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訪北) 이후 2주가 지난 현재까지 실무협상에 대한 진전은 없는 상태다. 미국은 핵 프로그램 전체리스트와 비핵화 시간표를, 반면 북한은 체제보장 조치의 첫 단추인 ‘종전선언’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각각 내뱉으면서 대화가 공전하고 있다. 우리 외교안보라인이 이번 동시다발적 회동을 통해 미국 측에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설득했을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통해 비핵화 협상의 숨통을 트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미군 유해 송환 협상이 일정 수준 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 판문점 선언에 적힌 ‘종전선언’에 나설 차례라는 논리로 미국 측에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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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조기 종전선언 카드가 현실화한다면 9월 유엔총회 계기에 이뤄지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의 로드맵으로 8월말 또는 9월초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9월 유엔총회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영 외교장관 전략대화 참석차 영국을 방문했던 강 장관은 지난 18일 “9월 유엔총회에서의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종전선언’이 먼저 이뤄질 경우 미국이 또다시 북한에 ‘굴복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워싱턴 정가에서 ‘비핵화 회의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북한에 선물이나 다름없는 종전선언을 덜컥 약속한다면 예상보다 ‘비판’의 강도가 커질 수 있다. 이미 북한은 대외용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등을 통해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첫 공정”이라며 군불 때기에 나섰다.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감축이나 군사옵션과도 분리될 수 없는 사안인 점도 미국으로선 부담이다. 자칫 전략적 판단 미스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비핵화 장기전을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지난(至難)한 협상 과정에서 긴요하게 쓰일 ‘종전선언’ 카드를 너무 쉽게 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트럼프 행정부 내에 팽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