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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국군 제1사단 12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수원 북방전투(1950년 7월3~4일)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 북방 전투 당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는 한강 방어선에서 철수했다. 1950년 7월4일 혼성수도사단과 육군 2·7사단이 시흥-안양-군포-수원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제105전차여단 공격을 방어했다. 육군 1·3사단이 판교-금곡리-풍덕천-수원에서 북한군 제3사단의 공격을 방어했다.
고인이 전사한 후 60여년이 흐른 2012년 11월16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박 이등상사의 좌측 대퇴골 일부 유해와 전투화 밑창, 버클, M1탄 등 유품이 수습됐다.
고인은 1928년 1월12일 전북 정읍 산내면 일대에서 4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0세에 혼인한 박 이등상사는 아내를 두고 참전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벽에 전사자의 군복 입은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기도했다. 아내는 92세를 일기로 2019년 별세했다.
고인의 동생 박희만(69)씨는 “형님의 유해를 조금 더 빨리 찾았더라면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형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슬프고 목이 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