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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거대한 캔버스에 원초적인 붓질이 그득하다. 가로 245㎝, 세로 287㎝ 화폭을 채운 뜻 모를 ‘필체’다. 유화와 필묵의 경지를 넘나든다는 평이 이런 것일 게다. 그의 그림을 가리켜 ‘선의 유희’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붓의 연습과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40년간 작업이 그랬다. 서양화가 오수환(66)이다.
무작위한 기호, 직관에 기대어 얻은 우연의 효과가 오수환이 추구하는 창조의 기본이다. 그의 작품엔 마치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뿜는 듯한 힘찬 획이 살아 있다. 일필휘지다. 분명 유화인데 먹의 활기가 보인다. 단순하지만 묵직하고 자유롭지만 강인한 그 추상에 그는 ‘변화(Variation)’라 이름을 붙이고 연달아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의 추상은 다르다. 적어도 서구의 추상을 수용했던 당대 한국 주류추상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서구 현대 회회의 조류를 받아들이면서도 ‘노자’와 ‘장자’ 등 동양사상을 바탕에 둔 까닭이다. 덕분에 ‘무’와 ‘공’을 맴돈다는 작품세계에는 동서양이 혼재돼 있다. 그 안에서 거침없이 내린 역동적 선긋기는 아이들의 낙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원시성’을 그는 중시한다. 현대사회의 고통들이 본성과 근원에 관심을 가질 때 처방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작업은 의미 없는 기호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무화시켜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림 자체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사짓는 거, 쓰레기 치우는 거와 다를 게 없다는 전제 아래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림을 어떻게 보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해답도 목적도 없는 의문 하나가 던져진다면 그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말이다. 관조와 무위의 철학. 그저 바라보고 내버려둘 뿐이다. 12월 9일까지. 02-3217-6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