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이 말했다 '예술이 별것이오'

추상화가 오수환 개인전
김종영미술관 내달 9일까지
자유분방한 선으로
원시적 아름다움 표현
  • 등록 2012-11-14 오전 11:18:26

    수정 2012-11-14 오전 11:35:30

오수환 ‘변화’(사진=김종영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거대한 캔버스에 원초적인 붓질이 그득하다. 가로 245㎝, 세로 287㎝ 화폭을 채운 뜻 모를 ‘필체’다. 유화와 필묵의 경지를 넘나든다는 평이 이런 것일 게다. 그의 그림을 가리켜 ‘선의 유희’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붓의 연습과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40년간 작업이 그랬다. 서양화가 오수환(66)이다.

무작위한 기호, 직관에 기대어 얻은 우연의 효과가 오수환이 추구하는 창조의 기본이다. 그의 작품엔 마치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뿜는 듯한 힘찬 획이 살아 있다. 일필휘지다. 분명 유화인데 먹의 활기가 보인다. 단순하지만 묵직하고 자유롭지만 강인한 그 추상에 그는 ‘변화(Variation)’라 이름을 붙이고 연달아 작품을 발표해왔다.

오수환이 최근 작업한 ‘변화’ 연작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전관에 걸쳐, 올해 작업한 10점을 포함해 근작 20점을 걸었다. 300호 이상 대형작품도 7점이다. 같은 크기의 캔버스를 연이어 붙이고 각각 다른 이미지를 병치하길 즐겼던 작가만의 독특한 작업도 볼 수 있다.

그의 추상은 다르다. 적어도 서구의 추상을 수용했던 당대 한국 주류추상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서구 현대 회회의 조류를 받아들이면서도 ‘노자’와 ‘장자’ 등 동양사상을 바탕에 둔 까닭이다. 덕분에 ‘무’와 ‘공’을 맴돈다는 작품세계에는 동서양이 혼재돼 있다. 그 안에서 거침없이 내린 역동적 선긋기는 아이들의 낙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원시성’을 그는 중시한다. 현대사회의 고통들이 본성과 근원에 관심을 가질 때 처방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작업은 의미 없는 기호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무화시켜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조형예술이 도달해야 할 궁극을 그도 고민한다. 하지만 대상의 진술이나 묘사에 매이지는 않는다. 진술보단 침묵, 묘사보단 지우기에 가깝다. 색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의도와 재료가 어떻게 잘 조화되는지, 재료 자체가 가지는 힘을 어떻게 살려내는가에만 관심이 있다고 토로한다.

“그림 자체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사짓는 거, 쓰레기 치우는 거와 다를 게 없다는 전제 아래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림을 어떻게 보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해답도 목적도 없는 의문 하나가 던져진다면 그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말이다. 관조와 무위의 철학. 그저 바라보고 내버려둘 뿐이다. 12월 9일까지. 02-3217-6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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