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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강원도)= 이데일리 박기주 손의연 박순엽 기자] 동해안의 봄철은 악몽이다. 2000년대 들어서만 봄철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10건, 이로 인해 불탄 산림만 여의도 면적의 90배를 넘는다. 고온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부는 지역의 특성 탓이다.
하지만 이처럼 반복되는 재해에 대한 대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특히 강원소방본부가 계속해서 요청해온 특수헬기 도입은 국회에 발목을 잡혀 무산됐고 이번 화재 피해를 키운 요인이 되기도 했다.
건조·강풍, 이번 산불 피해 키워…경찰 발화 원인 찾는 중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4일 강원도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 등에서 발생한 산불은 대부분 진화됐고 현재 소방당국은 뒷불 감시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불은 약 530㏊의 임야와 주택 400여채를 태웠다.
이번 산불 중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고성·속초 지역 화재는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 앞 전신주 개폐기에 연결된 전선에 튄 불꽃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 야산 등으로 옮겨 붙은 불은 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더해지며 빠르게 번져나갔다. 특히 봄철 영서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양간지풍(양양과 간성지방에 나타나는 지방풍)`이 산불의 확산을 부추겼다. 당시 이 지역에는 태풍을 방불케 하는 강풍이 불며 불꽃이 수백미터까지 날아가 곳곳을 불태웠다.
하지만 다행히 전국에서 820대의 소방차가 동원되는 등 단일 화재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소방인력이 투입되면서 화재 피해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경찰과 관계당국은 이번 산불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합동 감식에 나섰다. 고성·속초 지역 산불은 전신주 개폐기 내 전선 스파크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강릉·동해 지역과 인제 지역 산불은 여전히 원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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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강원소방본부에서 산불 대응을 위해 특수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예산을 요청했지만 국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원소방본부가 도입을 계획한 대형헬기는 러시아에서 제작한 `카모프 대형헬기`로, 3400ℓ의 물을 운송할 수 있고 강풍(25m/sec)에도 운항이 가능하다. 1대 가격은 250억원 수준. 동해안 특유의 강풍을 이겨내고 진화작업을 할 수 있는 기종으로 평가된다. 현재 강원소방본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헬기는 자체 물탱크가 없고 강풍에서 운항이 불가능(15m/sec 이하에서 운행)하다. 또한 독일회사에서 제작하는 산불전문 진화차는 대당 약 10억원으로, 3000ℓ의 물탱크를 갖추고 있고 산악지형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장비다.
이러한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총 사업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135억원을 국비 지원 예산으로 요청했지만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반영되지 않아 예산 확보가 무산됐다. 4일 현장을 찾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작년 국회에서 강원소방본부에 대한 현황을 점검하고 적극 지원을 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마지막 예산의 문턱을 못 넘었다”며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할 소방분야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이 일을 계기로 박차를 가해 여러 제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강원소방본부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도 시달리고 있다. 5일 현재 강원소방본부 현재 인력은 3681명 수준으로 기준정원(5135명)의 71.6%에 불과하다. 소방인력이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돼 있어 지방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역은 이를 확충할 수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2018년 기준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28.7%로, 전국 평균 53.4%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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