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해된다. 북한은 수년째 생필품을 제외한 모든 물자 반입이 중단된 상태다. 국제사회 제재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정상 회담 당시 제재 완화부터 요구한 속셈도 이 때문이다. 설령 유엔 결의를 무시하고 강행한다 해도 미국이 용인할리 없다. 미국 첩보위성은 24시간 북한 전역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피해 원전을 건설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018년은 남북 대화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던 시기다. 서로에게 도움되는 정책 변화가 기대됐다. 북핵을 폐기하는 대신 원전을 건설해 전력난을 해결해 준다면 유용한 협상 카드다. 그럴 때 실질적인 북핵 폐기도 기대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준비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이적행위’ 운운한 것은 지나친 편견이자 피해의식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시도했던 사안이다. 결국 섣부른 비난으로 전직 대통령까지 부정하는 모순을 초래하게 됐다. 터널이 개통되면 일본에만 도움 된다는 주장도 어설프다. 김대중 정부 당시 일본 문화개방을 앞두고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결과는 알다시피 왜색문화가 아니라 한류가 일본을 덮었다. 왜 일본 앞에만 서면 자신감을 잃는지, 그게 문제다.
무엇보다 지식기반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12개 대학을 묶어 ‘외레순 대학’을 설립했다. 또 ‘외레순 사이언스 리전(OSR)’ 클러스터도 조성했다. 연구 인력과 인재들이 몰리면서 두 지역은 북유럽 최대 지식기반산업단지로 떠올랐다. 20여년이 흘러 ‘OSR’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정도다. 여기에는 의약품, 식품, 정보통신 분야 2,500여 개 기업이 들어섰다. 영국, 프랑스 역시 유로터널이 뚫리면서 적에서 동반자 관계로 전환됐다.
한일 해저터널도 이런 관점에서 따져 봐야한다. 경제적 실익과 양국 관계 개선에 도움 되는 지다. 친일논란은 엉뚱하다. 오만과 편견으로는 여당과 야당,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벽을 넘을 수 없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디아시와 엘리자베스는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물론 현실이 영화 같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정치에 필요한 게 있다면 대화와 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