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여운 속물성에 대해 이만한 위트를 가지고 서늘하게 통찰하는 영화를 최근에 또 본 적 있던가? 정직하게 고백컨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크게 외치고 싶었다. 미안해요, 미처 몰라봐서.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즐겁게 시청했지만, 영화제작 소식을 듣고선 좀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무슨 깡이지?
▲ 만화적 과장과 일상의 리얼리티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예지원(최미자 역)의 연기는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압권이다. | |
연말연시 부모님께 모처럼 효도하고 싶다면, 혹은 왠지 서먹한 가족 간의 분위기를 훈훈하게 데우고 싶다면 딴 거 없다. 바로 이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함께 보시라.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 라거나, “엄마아버지는 주책이야. 다 늙어서 왜 그러세요?”라는 세대 간 몰이해의 폭을 분명히 조금은 좁힐 수 있을 테니까.
영웅은커녕 변변히 제 앞가림하며 사는 인물 하나 없고, 두 노처녀의 짝사랑 사연과 한 노총각의 어설픈 범행모의(?) 말고는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서사조차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의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웃고 있어도 눈물나게 만드는 내공이야말로 세상 모든 대중예술의 목표이자 의무가 아니던가.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 먹먹한 장면 하나. 좌충우돌 미자네 식구들이 제각각 경찰서에 몰려가 한바탕 소용돌이를 겪어낸 다음날 아침, 누군가 심상하게 김치 한 포기를 썰고 있다. 그 손은 이윽고 국수 꾸미를 정성껏 삶는다. 그동안 있는 듯 없는 듯했던 미자 아버지의 손이다. 모두가 괴로운 아침, 그러나 인간이므로 밥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식구가 말아낸 국수 그릇 앞에 외로운 식구들이 빙 둘러앉는다. 아버지는 딸의 손에 가만히 젓가락을 쥐어준다.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큰할머니의 한마디가 그제야 머릿속을 쾅 울린다. “사는 게 별거냐. 그냥 아침에 눈 떠지면 사는 거야.” 아아,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이 저릿한 영화를 어쩌면 좋으랴.
영화 ‘올미다’(올드미스다이어리)는 2004년 11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1년간 KBS에서 방영됐던 동명의 TV 시트콤을 스크린으로 옮긴 극장판 버전이다. 시트콤 ‘올미다’는 예지원, 김지영, 오윤아 등 30대 노처녀 세 명과 할머니 세 명, 그리고 ‘연하남’ 지 PD를 내세우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시각으로 결혼과 연애에 접근, 마니아 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트콤 김석윤 PD가 감독을 맡았고, 김영옥, 김혜옥, 임현식, 우현 등 시트콤 주요 출연진이 영화에도 같은 배역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