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추가연장근로 결국 일몰…'불법' 위험 안고 일하는 중기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 연기 무산
고용부, 계도기간 1년 부여로 급한 불은 껐지만…현장 혼란은 여전
중기업계 "계도기간 미봉책 불과"…중기중앙회 “보완 입법 필요”
이영 장관 "이제 중기부의 시간... 입법 위해 최선 다할 것"
  • 등록 2023-01-01 오후 2:53:19

    수정 2023-01-03 오전 12:21:15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대기업은 주 52시간을 지키죠. 어떻게 지키는지 아십니까? 초과 근무가 필요한 업무는 하청업체에 맡기는 거에요. 그걸 거부하면 원청업체(대기업)가 우리한테 일감을 주겠습니까?” 경남 지역에서 건설·전기공사 업체 A사를 운영하는 류 모 대표는 주 52시간 근로제도의 맹점을 이같이 비판했다. 주로 대기업 B사의 하청 업무를 하고 있는 류 대표는 “B사가 출장을 보내야 하는데 본사 직원들이 주 52시간 근로를 넘기면 우리 직원들에게 B사 옷을 입혀 출장을 보낸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8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마지막 정기국회 본회의에서도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 연장이 무산되면서 30인 미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사는 범법자가 될 위험에 처했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2항에 따라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업무를 시키면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처벌이 뒤따른다는 조항 때문이다.

대다수 사업주들은 벌금을 각오하고서라도 생산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중앙회가 기업 4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5%가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일감이 일정치 않아 주 52시간을 지키면 생산 자체가 어려워져서다.

경기 남양주에서 의류 부자재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최 모 대표는 “향후 1~2년치 일감이 결정된 대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도에 맞춰 인력 조정이 가능하다”면서도 “일감 수주가 일정하지 않은 우리 같은 작은 회사는 인력을 무턱대고 늘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항변했다.

중기중앙회도 지난달 30일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최근 경기 침체와 유례없는 인력난으로 힘겨운 와중에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로 버텨왔다”며 “제도 종료로 기업은 생산량을 대폭 줄여야 하고 근로자들도 기존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장기간 근로로 내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이 절실하다보니 초과 근무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근무 시간을 넘어가며 일하고 싶다면서 현금으로 월급을 달라는 경우도 있다. 불법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는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영세·중소기업 사업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벤처기업을 포함해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가 필요한 사업장은 전국에 63만 곳으로 추산된다. 근로자 수도 약 600만명에 달한다.

다만 정부의 해법은 당장의 처벌만 미뤄두는 것으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계도 기간을 준 부분은 환영한다”면서도 “계도 기간 부여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추 본부장은 “보완 입법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주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1일 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크립토 파라다이스를 찾아 애로 사안을 청취하고 있다. 크립토 파라다이스는 ’22년에 창업한 직원 16명의 스타트업으로, 주 8시간 추가연장근무제 일몰로 인해 인력 운영에 애로가 예상된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도 2023년을 맞아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해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조주현 중기부 차관은 새해 첫 날부터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크립토 파라다이스’를 방문해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조 차관은 “고용부가 다행히 계도기간을 둬 운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중기부는 근로시간 제도 보완방안을 고용부와 협의해 적극적으로 마련하겠다”라며 “8시간 추가연장근로 문제는 부처 소관을 떠나 중기부가 직접 챙긴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기부 고위 관계자는 “업무량이 폭증할 때는 고용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업무 시간을 늘릴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제 허용 등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각 지방중기청을 통해 기업의 애로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 지원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임시조치와 함께 중기부는 업계의 우려를 계속 전달하고 고용부와 공동으로 법안 처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장관도 문제 해결의지를 보였다. 이 장관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상황(추가연장근로제 일몰연장 불발)에 대한 책임 부서인 중기부의 수장으로 제 마음은 많이 무겁다”라며 “이제 중기부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업계와 함께 중기부는 국회라는 큰 문턱을 넘기 위한 모든 일을 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 장관은 이르면 2일 이정식 고용부 장관과 함께 현장 방문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8시간 추가연장 근로제는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에 따른 한시적 보완제도로 30인 미만 기업의 경우 노사가 합의에 이르면 1주에 8시간의 추가근로가 가능했지만 지난해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이 지나면서 일몰됐다. 국민의힘은 추가연장근로제를 2년만이라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30인 미만 중소기업에 적용하는 주 60시간제가 현행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역행한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이견차로 해당 법안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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