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다. 가슴을 후빈다. 척박한 얼굴에 드리운 고뇌, 애써 고통을 내리누르는 표정이 말이다. 사정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캔버스 하나를 축축이 적신다. 이름도 제대로 얻지 못해 ‘무제’(Sans Titre·1995)인 작품은 작가 하태임(51)의 초기작이다.
| 하태임 ‘무제’(1995), 캔버스에 아크릴, 130×130㎝(사진=포스코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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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9년 전 저 그림에서 작가의 시그니처인 ‘컬러밴드’를 끌어내긴 쉽지 않다. 하지만 흔적이 없진 않다. 슬쩍 비치는, 아니 바닥 깊은 곳에 ‘색띠’가 가라앉아 있으니까. 넓적한 고무밴드를 쭉 잡아당긴 뒤 싹둑 가위질해 정갈하게 잘라낸 듯한, 반쯤 휜 토막에 색의 조화를 입히는 일.
작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작업이 그랬다. ‘통로’(Un Passage)란 연작명 하나로 이어온 붓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랬으려니 했을 거다. 형체 잃은 색덩이가 화면에서 춤을 추고(‘문’ Une Porte·2007), 어디선가 흰띠가 풀려나와 색판을 휘두르는 장면(‘통로’ 2008)도 놀라운 역사니까.
그런데 얼룩한 저 붉은 몸뚱이 속에 박힌 색이 ‘컬러밴드’의 시원이란 거다. 자화상이란다. 작가가 가장 쓰라리게 들여다봤을 자신의 모습. 구구절절 풀어놓는 말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
12월 8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미술관서 여는 개인전 ‘하태임, 강박적 아름다움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다. 초기부터 최근까지 30년 작가세계의 길목을 지킨 회화작품 50여점을 걸었다.
| 하태임 ‘통로’(Un Passage·2008), 캔버스에 아크릴, 150×150㎝(사진=포스코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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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태임 ‘통로 No.241036’(Un Passage No.241036·2008), 캔버스에 아크릴, 181.5×291㎝(사진=포스코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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