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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이슬람 대규모 성지순례 행사인 ‘하지’(Hajj)에 참석했다가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이 1000명에 달하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대응방식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순례단 참가비가 너무 비싸고, 허가를 안해주면서 미등록 순례자가 오히려 증가하는 등 관리가 허술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3일 AF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부터 19일(현지시간) 치러진 ‘하지’ 행사에 참여한 순례자는 180만명으로, 이 중 약 1000명이 사망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순례단 허가를 받지 못한 미등록 취약계층으로, 화씨 125도, 섭씨 51.6도의 폭염에도 냉방시설을 이용할 수 없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WP는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한 숙박시설과 냉각센터 등을 이용하지 못한 미등록 순례자들이었다”며 “서비스 시설 부족으로 미등록자는 이용을 할 수 없게 하면서, 폭염에 따른 건강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전했다.
미국 기상학회가 발표한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북반구의 다른 지역보다 50% 더 높은 속도로 온난화 현상을 겪고 있다. 미국기상학회는 “이 추세가 지속되면 에어컨에 대한 지속적인 접근 없이는 이 지역의 인류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똥은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으로 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하지와 움라 조직자연합 샴 레스피아디 회장은 “사우디 경찰이 하지가 시작되기 전 미등록 순례자들을 단속,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을 샅샅이 뒤졌고 적절한 서류를 소지하지 않은 수백명을 체포했다”고 WP에 전했다.
사기를 당한 경우도 적지 않다. 저소득 국가 출신의 많은 순례자들은 하지 공식 여행사로 가장한 브로커나 여행사에게 사기를 당해 돈만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고 WP는 전했다. 이집트 정부는 22일(현지시간) 등록되지 않은 순례자들의 여행을 도운 16개 관광업체의 허가를 취소하고, 소유주와 관리자들을 검찰에 회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순례자의 상당수는 고령자로, 일부는 죽기 전에 하지를 수행하기 위해 평생 모은 돈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아직까지 사과 등 정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사우디 보건부 파하드 알-잘라젤 장관은 올해 하지 건강 계획의 성공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울러 사우디 당국은 하지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가족들이 시신 송환을 요청하지 않는 한 메카에서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