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유태인은 과연 누구인가

  • 등록 2006-12-07 오후 12:40:11

    수정 2006-12-07 오후 1:30:07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약간의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미국은, 특히 뉴욕은 실로 유태인의 제국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명제가 전혀 과장을 섞지 않은 사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기자도 100% 동의하는 바다.

타 인종에 비해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은 유태인들은 특히 뉴욕을 위시한 미국 동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월가 투자은행, 거대 로펌, 주요 언론사, 각종 연예 및 미디어 기업, 대형 병원과 학교 등 뉴욕의 각 분야 최상위층에는 빠지지않고 유태인들이 포진해 있다.

뉴욕의 식품 업체, 청소 업체, 보석 가게 등 소규모 자영업계도 유태인이 장악했다. 유태인 명절에 뉴욕 인근의 모든 학교가 휴교할 정도로 이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러니 미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인종은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WASP)가 아니라 미국 전체 인구의 3%도 안 되는 700만명의 유태인이라는 말이 나올 법 하다.

올해 초까지 세계 경제를 좌우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헨리 폴슨 현 미국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미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유태인이다. 경제, 언론, 할리우드 등 유태인이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힘든 분야의 인맥은 너무 많아 언급을 생략하겠다.

많은 한국인들은 유태인의 독특한 성공학과 교육 방법을 잘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한국인과 비교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기자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유태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돈만 밝힌다는 유태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한국인과 유태인 특유의 폐쇄성, 이국 생활의 고단함 등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한 결과겠지만 유태인과 시나고그(유태교 예배당)가 넘쳐나는 뉴욕에서조차 우리 모두가 너무 유태인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타 인종에게 비춰진 유태인의 모습이 오직 물질적 성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지, 과연 우리가 유태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한국인에게 영어 개인 교습을 하며 살아가는 유태인 리차드 가드너(52) 씨를 만나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됐다.

어머니는 100% 유태인이지만, 아버지가 반만 유태인인 관계로 그는 가드너(Gardner)라는 다소 유태인스럽지 않은 성을 갖고 있다.  또한 그는 한국에 대해 매우 친숙한 미국인이기도 하다.


20대 중반 하와이 대학에서 한국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90년대 초에는 2년간 연세어학당을 다녔다. 유명 한국 정치인과 그들의 자녀를 가르친 적도 있고 지금도 일상의 대부분을 한국인과 함께하고 있다.

가드너는 "유태인이 누구인지는 나 자신도 정확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면서도 "일단 미국 내 유태인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눠 설명하는 것이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태인을 정통파(orthodox), 보수파(conservative), 개량파(reformed)로 구분했다. 이는 단지 종교적 태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도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우선 정통파(orthodox) 유태인은 유태인 특유의 강한 선민 의식을 지닌 채 엄격한 유태교 교리를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유태교 휴일에는 일체의 기계나 전기제품 사용 등 일체의 현대 문명을 거부한다. 여성들은 어떤 이유에서도 남편 외의 남자와는 악수와 같은 간단한 신체 접촉도 하지 않는다.

가드너 자신이 속해있다고 밝힌 보수파(conservative)는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인정하되 현대 문명과 미국식 생활 방식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미국 교육을 받으면서도 휴일에는 유태교 학교에 다니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반드시 시나고그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자 랍비와 같은 유태교의 개혁 양상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다. 욤 키푸르(대 속죄일)과 같은 유태교 명절에만 시나고그에 간다는 가드너 역시 "내가 보고 배운 바로는 여자 랍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개량파(reformed) 유태인은 완전히 미국화된 유태인을 뜻한다. 유태인으로서의 특별한 정체성도 없고, 타 인종과 결혼하더라도 자녀에게 유태인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다.

뉴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여름에도 검은 모자, 긴 턱수염, 구불구불한 옆 머리, 검정색 긴 코트를 고수하는 유태인들은 어디에 속해있냐고 물었다. 가드너는 "그들은 유태교 신비주의 부흥운동을 믿는 루바비치 파의 사람들(Lubavitcher)"이라며 "나는 그들이 사이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쓰기와 말하기에도 능숙한 그는 또렷한 발음으로 `사이비`를 말했다.

물론 한 개인이 정의한 도식적 분류를 가지고 전체 유태인을 정의할 수는 없다. 모든 유태인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외모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분류한 세 집단 간의 왕래도 활발하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의 0.25%에 불과면서도 노벨상 수상자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유태인의 저력을 배우자"라는 식상한 구호만 외치기 보다는, 먼저 유태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똑같이 높은 교육열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한국인의 2세 교육 결과가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유태인의 오랜 국제화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인지를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미국 땅의 주류로 부상한 유태인의 성공이 부럽다면 최소한 그 비결을 알아내는 데 있어 수박 겉핥기 식의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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