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許하라]불륜 꼬리표 못뗀 홍상수…`유책주의` 언제까지

1965년 이후 혼인 파탄 책임자 이혼 요구 불가 원칙
2015년 대법 "사회 여건 변화해야 도입 가능…시기상조"
대법관 6명 "혼인 실체 소멸, 잘잘못 무의미" 반대의견
파탄주의 도입 불가피…제도적 뒷받침 선행돼야
  • 등록 2019-06-16 오후 3:35:53

    수정 2019-06-16 오후 3:38:57

홍상수(왼쪽)영화감독과 배우 김민희.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송승현 이성기 기자] 불륜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홍상수(59) 영화감독이 부인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 청구가 기각되면서 혼인 파탄 책임이 있는 유책(有責) 배우자의 이혼 청구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법원이 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이번에도 재확인 한 셈인데, 현실적으로 혼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면 누구든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파탄주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14일 2년이 넘는 심리 끝에 홍 감독이 부인 A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우 김민희(37)씨와 불륜 사이를 인정한 홍 감독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만큼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배우자가 단지 오기나 보복 감정 때문에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거나 잘못을 한 배우자가 이를 상쇄할 만큼 배우자와 자녀를 배려했다면 예외적으로 이혼을 허용할 수 있지만 홍 감독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지난 1965년 대법원 선고 이후 법원은 유책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유책주의 입장을 유지해 왔다. 가부장적 사회체제에서 경제권을 쥔 남편이 가정을 파탄 내고서도 아내를 빈손으로 내쫓는 축출 이혼을 막기 위해서였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15년에도 대법원은 혼외자를 낳은 남편의 이혼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이미 혼인 관계가 파탄 났다면 누구든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5년 9월 `유책주의 원칙을 바꾸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취지로 내연녀와 혼외자를 둔 A씨가 아내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도 13명 중 6명이나 됐다. 이들은 “혼인의 실체가 없어진 이상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고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혼인 생활의 회복이 불가능해 부부공동생활체로서의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소멸했다면 이는 실질적인 이혼상태”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시기의 문제일 뿐 파탄주의 도입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재산분할과 위자료 산정 시 유책 배우자의 책임을 엄중히 물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5년 당시 대법원 공개변론에 참여했던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경우 혼인 파탄 여부에 관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이혼으로 인해 고통이 예상되거나 자녀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경우 허용하지 않으며 형평에 맞는 재산분할과 위자료 지급 등이 이뤄지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용어풀이

유책주의·파탄주의: 유책주의는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法理)적 견해다. 반면 파탄주의는 부부 관계가 사실상 파탄이 났다면 누가 잘못했든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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