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사진작가로 50년. 여전히 필름카메라를 고집한다. 그는 성철스님에게 포즈를 취하게 한 유일한 사진가였다. 소설가 최인호는 그 앞에서 딸을 목마까지 태웠다. 문화·종교계 인물들은 그가 들이댄 카메라를 보곤 순순히 어떤 표정을 보여줬다. `아시아 최초의 매그넘 회원` `1세대 기록사진의 선구자`란 수식이 늘 따라붙는 주명덕. 그러나 칠순을 넘긴 노작가에게 더이상의 명성은 필요없다. 작업공간이 그렇게 말한다.
주명덕의 작업실은 경북 안동에 있다. 잡풀 우거진 길목을 따라들어가야 다다를 수 있는 외진 마을이다. 원래는 시골분교였다. 1995년부터 `주명덕 아뜰리에`라 이름 붙이고 그는 그곳에 `잦아들었다`. 작업실에서 가장 애정을 쏟는 곳은 암실이다. 그는 붉은색이 아닌 주황과 노랑 사이 색을 띠는 암등을 쓴다. 감도 높은 고급인화지 탓이다. 불을 끄고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서서히 켜지는 암등은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그와 썩 닮았다.
27살 젊은 디자이너.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등 앨범 디자인에 박은 복고풍 한글 레터링으로 히트를 쳤다. 김기조는 아직 학생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이 그의 무기다. 홍대 앞 사무가 잦지만 정작 그가 작업실을 차린 곳은 서울 쌍문동 어느 부동산 옆 가겟방이다. 뭐하는 데냐며 불쑥 문을 열기도 하고, 길에서 끌어온 잡동사니를 보고선 혹시 고물상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동네 사람들도 작업실 풍경의 일부다. 한켠을 차지한 로봇 같은 크고 작은 장난감 소품까지 영감의 원천이다.
한국 문화계를 이끌고 있는 스물네 명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들여다봤다. 거장 반열에 오른 이도 있고 이제 막 아티스트란 타이틀을 단 이도 있다. 화가, 패션디자이너, 가구디자이너, 미디어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건축가 등 장르를 국한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고유 공간을 소개하면서 예술관에 대해 묻고 답을 들었다. 인터뷰에 나선 저자들도 이들과 무관치 않다. 두 저자는 한 디자인잡지에서 기자로 같이 일했다.
| ▲ 회색벽돌로 뒤편의 쇼룸과 구분한 작업실. 이인우와 이현석, 두 패션 디자이너가 이끄는 SLWK의 서울 소공동 작업공간이다(사진=우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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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분위기나 입체적인 조망이 주도하지만 세부적인 묘사에도 공을 들였다.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낸 사진들이 한몫을 했다. 사진은 공간적 상상력을 프레임 밖으로 넓히고 또 가지 친다.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취향에 따라 특징을 잡아낸 것이 흥미를 돋운다. 이런 식이다. “벽에 세워둔 150호짜리 캔버스는 높은 천장 때문에 오히려 작아 보인다”(화가 하상림), “옛날 관공서에서 썼을 법한 철제책상 등이 미국영화 속 사립탐정의 사무실을 재현해놓은 듯하다”(인테리어디자이너 김승재), “1·2층은 사무실, 다목적홀, 전시실, 생활공간, 손님방, 주방, 세탁실 등으로 꼼꼼히 나눠져…”(사진작가 주명덕).
작품이 탄생하는 현장이 작업실이다. 책은 그 안에서 도대체 무엇이 나오는가가 궁금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곳이 철저하게 생존의 장소였다는 것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낭만과 여유, 기개와 신념보다는 규칙과 착오, 맥락과 흐름이 지배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결국 스물네 명 작업실에 비친 자신 삶의 공간을 제대로 들여다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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