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극심한 고물가에 수입 멸균우유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멸균우유는 고온에서 가열해 미생물을 없앤 우유다. 일반 우유 대비 큰 품질 차이가 없지만 가격이 절반 이상 저렴하고 보관 기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유(乳)업계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저출산 고령화로 소비층이 감소세인 상황에서 강력한 대체재마저 등장해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다.
| 한 소비자가 우유 매대서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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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우유 소비량은 430만8350t으로 전년(441만490t) 대비 2% 감소했다. 연간 우유 소비량은 2021년 444만8459t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감소세다. 주원인은 우유의 주 소비층인 아동 청소년층의 인구 감소가 꼽힌다.
반면 외국산 멸균우유의 수입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멸균우유 수입량은 3만7361t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3만1386t)대비 약 20% 늘어난 수치다. 3년 전(1만1413t)과 비교하면 무려 227.4%나 급증한 수치다.
실제 소비 현장에서도 수입 멸균우유 판매는 급증세다. 지난 1~6월까지
이마트(139480)의 수입 멸균우유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42% 증가했다. 같은 기간 CU에서도 53.9% 늘었다. 지난 6월만 해도 전년동기대비 44.6% 뛰었다. 지난해 7월 수입 멸균우유 제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한 GS25에서도 올해 5~6월 수입 멸균우유 판매량이 지난해 7~8월 대비 176.1% 신장했다.
수입 멸균우유의 인기 요인은 단연 저렴한 가격이다.
대형마트 기준 폴란드산 ‘갓밀크 멸균우유’(1ℓ)가 1900원, 독일산 ‘올덴버거 멸균우유’(1ℓ)가 2380원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우유,
매일유업(267980),
남양유업(003920)의 1ℓ 제품 가격은 대형마트 기준 2600~2800원대다. 이점을 고려하면 멸균우유가 100㎖당 100~200원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유업체들은 울상이다. 국내 우유 가격은 지속적으로 올랐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산 흰우유 가격은 ℓ당 3030원으로 전년(2928원) 대비 3.5%, 평년(2650원)보다 14.3% 증가했다. 앞으로 2026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 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면 국내 유제품은 더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문제는 올해 국산 우유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낙농가와 유업계는 우유 원유(原乳) 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유업계는 가격 인상을 최소화 하자는 입장이지만 낙농가에서는 사룟값 등 생산비 상승을 들어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ℓ당 최대 26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유통사들은 가격 인상을 대비해 멸균우유 수입량을 대거 늘리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우유의 심리적 저항선인 ℓ당 3000원 선까지 깨지면서 저렴한 수입 멸균우유가 반사이익을 보는 상황”이라며 “유통사들도 고객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관련 상품 취급을 늘리고 있는 만큼 멸균우유 수입은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