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발언대]학종을 불신하는 이유

학종 불신은 교사와 입학사정관에 대한 불신
사람 못 믿으면 시스템으로 풀어야
  • 등록 2018-11-10 오전 9:00:00

    수정 2018-11-10 오전 9:00:00

[임진택 경희대 수석입학사정관] 학교 불신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강남 숙명여고의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고교 내신 불신을 넘어 대입 학종 불신으로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한 개인의 일탈로만 보지 않고 고등학교에 만연한 문제로 의심하고, 학생부를 중요하게 활용하는 학종도 못 믿겠다고 아우성이다.

교육당국이 전수조사를 통해 밝히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결과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일로 본말이 전도되어선 안 된다. 지난 10년의 교육혁신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고교, 대학의 노력까지 폄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가히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학교가 빠르게 변해왔다. 학생부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매해 재학생이 이전 졸업생보다 기록이 더 풍성하고 섬세하다. 학교는 차별화된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른 학교와 연합해 공동교육과정까지 개설한다. 도시·농어촌학교, 특목고·일반고를 가리지 않는 보편화한 현상이다.

경시대회, 표창장 명칭 하나에도 ‘인사큰상, 소통협력나누기대회, 기숙사하모니표현대회’처럼 교육적 의미를 담으려고 애쓴다. 교사들은 기존의 강의식 수업에 토론, 발표 등 학생참여형 수업을 병행하는 수업 혁신에 분주하다. 거기에다 학생이 발표한 내용, 수업태도까지 평가하고 세밀하게 기록하느라 힘겹다. 복사해서 붙여 넣던 학생부가 ‘주제탐구, 지적호기심, 자아 성찰력, 진로탐색, 도전정신, 나눔과 배려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학생도 더 이상 학교를 수능·내신 경쟁만 하는 전쟁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고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협업과 소통을 배운다. ‘1학년 법조인, 2학년 법률정책분야, 3학년 복지분야 종사자’가 되겠다는 꿈도 키우며 성장한다. 관심 분야 책도 읽고 현장도 방문한다. 월 2~3회씩 주말마다 지역의 다문화센터를 방문해 다문화가정 아이를 지도하기도 한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참 대견하다.

대학도 고교를 직접 찾아가 대입전형을 소개하고 교사에게서 고교의 교육환경과 특성화 프로그램에 대해 듣는다. 고교도 대학을 방문해 학교를 적극적으로 알린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알게 되고, 대학도 고교도 ‘학생’ 한명 한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운다. 지난 10년 학교도 교사도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두고, 더 세심하게 관찰하며, 더 세밀하게 기록해왔다.

이러한 학종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불신이 확산하는 이유는 뭘까. 학종 불신은 학생부를 기록하는 교사에 대한 불신과 주관적 판단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에 대한 불신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사람에 대한 불신이다.

역설적으로 사람을 못 믿겠다면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게 방법이다. 선진국일수록 사람보다는 안정화된 사회 시스템으로 신뢰를 만든다. 잘 마련된 규칙이 있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위반 시에는 가차 없이 일벌백계한다.

우리도 학종 공적 신뢰시스템을 만들자.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살피는 학종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땜질식 개선이 아니라 한 번에 고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사례도 참조하고 이전 정치권의 주장도 재검토하자. 지금까지 우리도 공정하고 투명한 학종 시스템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참에 학생부종합전형, 입학사정관 운영을 공공시스템으로 만들어 신뢰를 회복하자.

첫째, 고교의 학생부는 독일과 같이 복수의 교사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서 함께 기록하고 점검체계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둘째, 대입에는 지난 3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제안한 ‘공공입학사정관(가칭)’ 도입을 고려해보자.

학종 신뢰는 평가자인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에 달려있다. 이들 다수가 계약직 신분으로 열악한 고용환경에 놓여있다. 2년마다 대학을 옮겨 다녀야 하는 환경에서 전문성을 쌓기란 요원하다. 대학에다가 맡겨둘 일이 아니다. 장기 로드맵 없이 여전히 1~2년짜리 정부 재정지원 사업으로는 언제 중단될지 예단할 수 없어 대학도 선뜻 인력충원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입학사정관의 공적 성격을 강화해 학교의 정상적 운영과 학생의 전인적 성장에 기여하도록 엄격한 관리체계를 담은 법률을 만들어 보자.

가칭 ‘공공입학사정관법’에 입학사정관의 자격요건, 공적 역할, 필수 교육이수, 재정지원, 처벌규정 등을 두는 것이다. 고등학교 공·사립학교 교사처럼 국가가 인건비를 지원하되 입학사정관은 학교 교육의 내실 있는 운영과 학생의 전인적 성장에 기여하고 대학의 학생 선발을 전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34조2(입학사정관등)은 “대학에게 입학사정관의 채용 및 운영을 권장할 수 있고, 국가는 이들을 운영하는데 사용되는 경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는 법률을 만들자.

주관적 판단에 의한 불신이 문제라면 한 개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다수에 의한 다단계 결정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학종 신뢰는 입학사정관에 대한 막연한 기대, 윤리와 도덕성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국처럼 사람보다는 체계화된 시스템, 공통규약을 담은 특별법을 통해 해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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