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이름 봄날. 경주 부근의 경천역에 내린 22세의 청년은 사뭇 설레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식민지 시대 우리말로 시를 쓸 수 없던 상황에서 갑갑하기만 했던 청년은 다섯 살 위인 그의 시를 보고 동지애를 느꼈다. 편지를 보내 마음을 전했고 서로 만남을 약속한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하고 미국 버클리대학의 한국문학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저자가 현대 근현대 한국 문학과 미술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순간들을 찾아내 특유의 서정적 필체로 풀어냈다. 지난 2012년부터 ‘권영민의 문학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펼친 문학 강연의 원고와 일간지 등에 발표했던 칼럼들을 묶어 작가들의 뒷이야기와 인간적인 모습을 전한다.
정병욱은 일제의 태평양 전쟁 전선에 투입됐다가 부상으로 고국에 돌아왔고 해방 후에야 윤동주가 1945년 2월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병욱은 다시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징병 전에 맡긴 짐 속에 있던 원고를 잘 간직하고 있는지 물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아들의 짐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양조장 큰 장독에 숨겨놓았다가 해방 후 이를 꺼내 명주 보자기에 여며 장농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만약 정병욱의 어머니가 아들이 맡겼던 윤동주의 원고를 지키지 못했더라면 윤동주 시집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20대의 조지훈과 박목월이 목월의 고향 경주 인근 경천역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와 같다. 조지훈은 1955년 발간한 박목월의 시집 ‘산도화’의 발문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얼마 뒤에 목월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 짧으면서도 면면한 정회가 서려 있는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꽃이 한창입니다(중략)’ 이 짧은 글을 받고 나는 이내 전보를 쳤다.”
학술적인 문학 이론이나 작가들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보다 작가들의 개인사와 시대의 곡절이 유려하게 연결된 덕에 읽는 부담이 덜하다. 윤동주와 조지훈, 박목월 외에도 이상이나 이광수, 한용운 등 그저 시험 문제로만 익혔던 작가들의 연표 뒤에 숨어 있는 개인사와 문학 작품 탄생의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작가들이 남긴 인품과 우정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