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많은` 전자세금계산서..기업들 반발

국세청, 2일부터 `e-세로` 시험운용 실시
이메일 기반 방식·ASP 강매·전담인력 부족 등 `문제`
국세청, 항의성 게시글 설명없이 일괄 삭제.."권위주의 버려야"
  • 등록 2009-11-03 오전 9:55:36

    수정 2009-11-03 오후 3:52:24

[이데일리 박기용기자] 국세청이 내년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전자세금계산서 제도가 다소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자세금계산서 제도는 당장 내년 초부터 법인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지만, 책임 여부가 모호한 전자우편(이메일) 기반 시스템을 채택한데다 애플리케이션 임대 업체(ASP)들의 프로그램 강매 문제가 제기되는 등 제도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지난 2일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시스템인 `e-세로`의 시험운영에 들어갔다. `e-세로`의 시험운영은 내년 초부터 법인사업자들의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이 의무화되는데 따른 것으로 내달 18일까지 계속된다.

국세청은 `e-세로`의 시험운영을 통해 나타난 문제들을 반영해 내년 1월1일부터 법적 효력을 갖는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제도 시행과 관련된 각종 문제들에 대한 지적이 여전한 상황이다.

◇ 이메일 통신 방식, MS파일 법정형식 지정 등 문제

전자세금계산서의 문제는 우선 발행자와 수신자 간의 이메일 통신을 전제로 설계된 방식이라는데 있다.

법인사업자가 이메일(전자세금계산서)을 보내지 않는 경우 2%의 가산세를 물게 되고, 이를 다시 국세청으로 전송하지 않는 경우 1%의 가산세를 물게 돼 있다. 1억원짜리 세금계산서라면 가산세만 300만원을 내야 한다. 주소 오기나 메일함 용량초과, 스팸차단, 서버다운 등의 각종 다양한 이유로 이메일이 제대로 발송되지 않을 수 있는데다, 각각의 경우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행자가 온전히 가산세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이메일 주소가 없는, 전산화가 취약한 거래처도 있을 수 있다. 결국 각 회사 경리 담당자가 이메일을 보내놓고도 일일이 전화로 상황을 확인해야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프로그램인 `엑셀`을 기본 파일형식으로 정해버린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텍스트(text) 파일을 기본형식으로 할 수 있음에도, 특정 민간회사 프로그램의 파일형식을 법정 기본형식으로 정한 것이다. 공인인증서 역시 MS 프로그램인 인터넷 익스플로러 전용으로 돼 있다.

◇ ASP 강매, 전담인력 부족도 문제..인터넷 없는 영세사업자 `난망`

대기업 계열 애플리케이션 임대 업체(ASP)들의 프로그램 강매도 문제로 지적된다.
 
ASP는 전자세금계산서 작성을 도와주는 별도의 프로그램 공급자를 말하는데, 국세청의 전자세금계산서인 `e-세로`는 서버 부하 문제 등의 이유로 일괄발행 건수를 10건으로 제한하는 등 불편이 많아 각 기업들은 별도의 전문 프로그램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대용량 전자세금계산서를 다루는 대기업들도 계열사나 민간 소프트웨어 업체를 통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여러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이나 개인기업의 경우 거래 상대에 맞춰 프로그램을 별도로 사용해야한다.

실제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세무회계프로그램 회사 `더존`의 경우 지난달 30일 세무사들에게 "다른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사업자의 데이터를 더존 회계프로그램에 연동시키지 않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더존 측은 타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서비스가 기장 오류와 부가가치세의 신고오류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자사 프로그램 사용을 강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석 달에 한 번이었던 신고기간이 한 달에 한 번으로 바뀌면서 각 법인 실무자들의 고충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세금계산서 발행 원인 행위는 대개 월말에 몰려있고 웬만한 중소기업은 경리 담당자 1~2명에 불과하다. 실무자 입장에선 매달 월말에서 다음달 10일까지 세금계산서와 씨름해야하는 상황이다. 담당자가 결혼이나 출장 등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경우 대체 인력을 찾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지연가산세를 물어야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은 영세 사업자들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주로 전화자동응답서비스(ARS)나 부가통신망(VAN) 단말기를 이용하게 되는데, 제품명이나 거래처명, 주소, 대표자 등의 문자정보를 숫자정보만 취급하는 ARS나 VAN을 통해 전송해야하기 때문이다.

◇ 중앙집중식 서버구축등 `대안`.."권위주의 버려야"

전자세금계산서 반대론자들은 국세청에서 정부 차원의 중앙집중식 서버를 구축하고, 기본 파일형식도 엑셀이 아닌 텍스트 파일 등의 범용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도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국세청의 권위주의가 주로 지적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신뢰하기 힘든 통신 방식인 이메일 시스템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 주된 문제"라며 "정부 차원의 중앙 집중식 서버를 구축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세청은 그동안 특유의 권위주의에 사로 잡혀 민간기업이나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 때문에 합의나 조정하지 못한 쟁점들이 적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세청 전자세금계산서 홍보 사이트 자유게시판에는 전자세금계산서와 관련한 질문들이 쇄도했지만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네이버 `지식인 검색`과 같은 인터넷 포털에 질문하고, 부정확한 대답을 얻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세청은 급기야 시험운영이 실시된 2일 그동안 `e-세로`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각종 질문과 항의성 글들을 아무런 설명 없이 일괄 삭제하기도 했다. 내년부터 전자세금계산서를 도입하지 않으면 법인사업자들의 경우 2%의 가산세가 부과되지만, 아직 이 내용을 몰라 준비조차 하지 않는 법인이 태반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제도 도입 초기에 으레 겪게 되는 혼란 정도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신재국 국세청 전자세원과장은 "전자세금계산서는 거래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하자는 게 취지"라며 "일부 오해가 있지만 오히려 빨리 해줘야 조기 정착되는 것이고, 막상 하게 되면 굉장히 편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77년 부가세법을 처음 시행했을 때에도 세금계산서 단속을 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전자세금계산서 제도에 대한 불만은) 심리적인 것이며, 불편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국세청, 항의성 게시글 삭제하기도..제도 개선여부 `주목`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의무 적용을 받는 법인의 실무자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차라리 부가세전자신고를 매월 의무화하는 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안 따라오면 가산세부터 부과하겠다는 발상은 이 제도가 장난이 아닌 이상, 한 나라의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세금계산서 제도 때문에 무자료 거래가 증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면서 "가산세 부담 때문에 오히려 자료 구입 비용만 상승시키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자세금계산서 수신시기와 관련해 매입자가 지정한 이메일이 없는 경우 국세청 `e-세로`에 전송하는 식으로 입법 보완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결국 이메일을 국세청으로만 보내면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할 바에야 새 제도 도입으로 각종 비용을 들이느니 그냥 부가세전자신고를 매월 의무화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법인사업자는 매입자가 누구이건 간에 상관없이 내년부터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 법인사업자가 전자세금계산서 이외의 세금계산서(기존 종이세금계산서 포함)를 교부하는 경우 공급가액의 2%를 가산세로 물게 돼 있다.

정부는 전자세금계산서 제도를 통해 종이세금계산서 사용에 따른 납세협력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본격 시행을 불과 두 달 가량 앞둔 상황에서 불거진 각종 문제들을 국세청이 어떻게 수습할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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