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년 태고의 신비 간직한 ''산중(山中) 스펀지'' - 울주 무제치늪

[람사르 습지] ⑦울주 무제치늪
"비 조금만 와도 진창"… 희귀동식물 257종 분포
멸종 위기에 처한 꼬마잠자리 산란처도 확인돼
  • 등록 2008-11-06 오후 12:00:00

    수정 2008-11-06 오후 12:00:00

[조선일보 제공] 지난 2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정족산 무제치늪. 얼기설기 군락을 이룬 진퍼리새(중부이남 습지에만 서식하는 벼과 식물)가 정족산 머리 끝에 걸린 석양을 배경으로 가을 바람에 길쭉한 몸 줄기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진퍼리새 사이로는 가을에 피는 하얀 물매화가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늪지 안내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무제치 제1늪에선 지난 여름 자주색 꽃을 피웠던 식충식물 '이삭귀개(쌍떡잎식물 통발과)'가 타원형 꽃받침에 싸여 둥근 열매로 익어가고 있었다. 간혹 눈에 띄는 미세한 물웅덩이 속엔 어린 아이 손톱 크기만한 수서곤충 '땅콩물방개'가 숨은 듯 납작 엎드려 있었다.

▲ 국내 최고(最古) 산지습지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무제치늪. 혹심한 가을 가뭄 탓에 습지의 물이 바짝 말라 마른 초원처럼 보 인다. 하지만 습지 바닥의 미세한 수로들에서 습기를 빨아들인 진퍼리새 등 희귀식물들이 강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가을 가뭄에 바짝 타들어간 산지습원

무제치늪은 산속의 습원(濕原)이다. 웅촌 덕현마을쪽에서 오르는 데 1시간30분 걸린다. 몇 갈래 다른 마을 길도 있지만, 어느 길로 오르거나 1시간은 넘게 긴 임도(林道)를 걸어야만 6000년 넘게 간직해왔다는 그 속살을 만날 수 있다. 정족산 정상 아래, 빗물로 습지를 유지하는 곳이다.

이번 가을 혹심한 가뭄에 무제치늪은 억새 사이에서 마른 땅거죽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영락없이 마른 초원처럼 보이지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바닥에 미세한 수로가 많은 분지형 습지다.

이곳에서 자주 산행한다는 등산객 정진(42·부산 금정구 구서동)씨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등산이 힘겨울 정도로 진창의 연속"이라며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인 것 같은 땅"이라고 말했다. 이삭귀개와 땅귀개 등 양지쪽 습지에 사는 식물이 많고, 갈수기 때도 견딜 수 있는 물이끼류 등 희귀한 습지식물들이 무제치늪에 많이 서식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 끈끈이주걱 꼬마잠자리

◆가장 오래된 산지습지

무제치늪은 6000년 전에 생성된 18만4000㎡(5만6000평) 규모 산지습지로, 해발 749.1m인 정족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국내 산지습지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4늪까지 네 개의 늪으로 이뤄져 있는데, 제1늪은 해발 510m에, 제2늪은 해발 558m에 있고, 거의 붙어 있는 제3늪과 제4늪은 해발 630m에 각각 위치해 있다.

무제치늪이 형성된 것은 심층풍화(지하수면 밑에서 이뤄지는 풍화작용)와 차별침식(지역에 따라 지표면의 단단한 정도가 달라서 서로 다르게 침식하는 것)으로 인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추정이다. 또 늪의 두터운 심층풍화층 밑에 형성된 화강암 기반암이 물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습지 밑바닥에는 미세한 수로가 많이 형성돼 있다. 항상 일정량의 수분과 물이 고여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희귀동식물 보고

무제치늪 주변 정족산 일대에는 습지식물 50여종을 포함한 257종의 희귀 동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끈끈이주걱과 이삭귀개 및 땅귀개, 큰방울새란, 진퍼리새 등 희귀 습지식물류가 55종이다. 또 멸종위기종(2급)인 꼬마잠자리와 큰물자라, 메추리장구애비, 애기물방개 등 수서곤충과 벌호랑하늘소, 왕거위벌레, 흰줄표범나비 등 곤충류가 197종이고, 무당개구리, 산개구리 등 양서·파충류가 5종이다. 특히 최근 일본 특산종으로 알려졌던 좀조개풀이 국내 최초로 보고됐고, 멸종위기에 처한 꼬마잠자리의 산란처가 확인됐다.

무제치늪은 이 같은 보존가치가 인정돼 1999년 8월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12월에는 충남 태안군 두웅습지와 함께 제1늪과 2늪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최근 찾는 발길 늘어

최근 2~3년 사이 습지 내에 관찰 데크가 설치되는 등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가족단위로 찾는 발길이 다소 늘었다. 하지만 산지 늪인 데다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임도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관광객이 접근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울산생명의숲 윤석 사무국장은 "무제치가 가진 가치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서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점이 태고의 신비를 잘 간직할 수 있었던 이점이라는 의견도 있다.

윤 국장은 "무제치늪 인근에는 10여 개의 습지가 산재해 있고, 정족산과 인접한 천성산 자락에도 대성큰늪, 밀밭늪 등 13개 습지가 있다"며 "무제치늪을 개별화해 보호하기보다는 주변 지역 전체를 폭넓게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야생이 숨쉬는 ''생명의 땅'' - 태안 두웅습지
☞습지·육지 식물이 나이테처럼 자라 (VOD)
☞''원시''를 품고있는 최초의 ''섬 산지습지''(VOD)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홀인원' 했어요~
  • 우아한 배우들
  • 박살난 車
  • 화사, 팬 서비스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