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표 ‘즉흥적 풍경-기원’(2022·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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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곤두선 그림이다. 한올 한올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다. 인조모피를 펼쳐두고 바늘로 스크래칭해 나무를 심고, 풀은 흔들리게 물은 흐르게 했다는 뜻이다.
작가 김남표(52)는 모피를 바늘로 긁어 그림을 그린다. 말이 쉬워 그림이지, 붓 한획으로 긋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세밀한 선들을 수만 혹은 수십만번 미세하게 건드리고 뽑아내야 간신히 한점 풍경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작업이 벌써 26년째란다. 마치 수도승이 구도의 길을 걷는 듯한 이 일에는 이유가 있단다. “회화는 숭고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가장 고단한 방식으로 개척해낸 건데. 연작 중 한 점인 ‘즉흥적 풍경-기원’(Instant Landscape-Origin #7·2022)은 바로 그 회화의 절대가치를 위한 작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헌신인 셈이다.
다만 작가의 수고만큼 ‘제3자의 주의’도 필요한데. “순간적 음영을 통해 이미지가 드러나는 만큼 손으로 쓱 문지르면 끝장”이란 거다. 흔히 털옷을 문지르면 납작하게 가라앉는 그 현상을 떠올리면 된다.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80길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서 여는 개인전 ‘검은 풍경’(Origin-Instant Landscape)에서 볼 수 있다. 인조모피에 스크래칭. 145.5×112.1㎝.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제공.
| 김남표 ‘즉흥적 풍경-기원’(Instant Landscape-Origin #3·2022), 인조모피에 스크래칭, 97×130.3㎝(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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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표 ‘즉흥적 풍경-감각의 광야’(Instant Landscape-Wilderness of Sense #3·2022), 캔버스에 오일·그래피티, 130.3×162.2㎝(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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