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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호언장담에도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부채를 줄이고 투자를 줄이는 등 충격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움직임이 특히 투자등급 중 가장 낮은 수준인 BBB 등급 기업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기 침체로 채권 등급이 한 단계라도 떨어지면 투기 등급으로 추락하며 이자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AT&T이다. AT&T는 지난해 타임워너를 인수하는데 1900억달러를 투자했는데 그 자금 중 상당 부분이 빌린 돈이다. AT&T의 부채가 에비타(EBITA, 이자·세금·감가상각비 등을 빼기 전 순이익. 해당 기업의 영업을 통한 현금 창출 능력)의 4.4배에 이르자 신용평가 무디스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AT&T의 신용등급은 A-에서 BBB로 두 단계로 떨어졌다.
당장 시장에서부터 AT&T가 부채를 적극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AT&T는 대표적인 배당주로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후했던 배당금을 줄여야 한다는 말로 이어진다. 그러나 AT&T가 부채 축소 계획을 발표하기 전 열린 지난해 가을 기업설명회에서 이같은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알려지자, AT&T 주가는 오히려 2.2% 올랐다.
신용평가사의 엄격한 태도도 영향을 미쳤다. 앤하이저부시인베브는 무디스가 회사 신용등급을 하향조정을 검토한다는 발표 이후 서둘러 부채 축소에 나섰지만 무디스는 회사 등급을 Baa1로 한 단계 낮췄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신용평가사가 부채에 대해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문제는 장기간 저금리 시대가 이어지면서 기업의 부채 규모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특히 BBB등급의 채권이 10년간 40%에서 50% 수준까지 올라간 상태다. 투기 등급은 아니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이자를 보장하는 이들 채권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결과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이들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고 채권 등급이 하락할 경우, 그 여파는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하드웨어를 제조하는 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이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장비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즈는 지난주 네트워크 장비 수주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맥스 고크맨 퍼시픽 라이프 펀드 어드바이저는 파이낸셜타임즈(FT)에 “중국으로의 판매가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무엇보다 기업들이 네트워크설비를 갱신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모든 것이 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토비아스 레크코비치 시티그룹 수석 전략가는 “체감경기는 기업의 투자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쉬워 무역 분쟁이나 해외경기의 약세 등 다양한 요인이 이를 좌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