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우리 금융시장의 약한 고리

  • 등록 2010-02-23 오전 10:00:01

    수정 2010-02-23 오전 10:00:01

[이데일리 윤영환 칼럼니스트] 지난 2월 3일 미래기획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가 공동 개최한 국제 세미나(주제: 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비전)가 있었다. 새로운 금융질서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활발한 시점에서 우리 당국의 입장을 살필 수 있는 자리였다.

미래기획위원장은 국제적 흐름과는 다소 다른 "전략적 사고"를 강조했다.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이라는 큰 틀의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무 장관은 우리 금융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우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부문의 위기재발 방지를 위한 과제로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리스크 부담"과 "예상치 못한 대외 충격에 항상 대비"를 제시했다. 또 금융위원장은 "금번 위기를 겪으며 한국 금융의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으로 "금융회사들의 쏠림 현상(herd behavior)과 대부분의 신흥국이 안고 있는 외환부문의 취약성과 같은 사례"를 지적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 기재부 장관은 "거시감독체계와 조기경보 시스템의 유효성 개선", "채권단 중심의 상시 기업구조조정과 감독 강화", "안정된 외환시장 구축"을 열거했다. 금융위원장은 "구조적 취약부문의 철저한 개선"과 "금융산업의 육성 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한국 금융에 대한 중장기 비전과 정책과제"를 준비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그리고 2월 8일에는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보험연구원이 공동주최하는 "금융선진화를 위한 비전 및 정책과제" 심포지움이 있었다. 며칠 전 장관들이 제시한 총론을 우리 금융시장의 3대 씽크탱크가 각론으로 뒷받침하는 자리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료는 요약조차도 무려 266페이지에 달했다(본문은 20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면 이 자료들이 우리 금융시장의 약한 고리를 모두 아우르고 있을까? 씽크탱크의 대단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모든 현안들이 단숨에 명쾌하게 정리될 수는 없다. 정책은 어디까지나 역사와 환경 그리고 참여자 사이의 피 말리는 이해관계 조율의 산물이다. 결국 스스로 챙겨야 한다. 회사채 시장 관련 주요 이슈들의 현황을 살펴 보았다.

◇ 은행대출과 회사채 시장

신용시장(Credit market)의 중심축인 은행대출과 회사채 시장은 많은 부분에서 이해관계가 대립적이다. 신용시장 구조와 금융위기 사이에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위기 전에는 대출이 압도하고, 위기 후에는 회사채 발행이 폭발한다. 우리 신용시장은 절대적으로 은행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결국 금융위기가 오면 예외 없이 당국이 직접 나서서 은행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도 논의는 오로지 은행의 대형화에 머물고 신용경로의 장기 비전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2008년 말 우리 은행들의 외화 유동성 위기는 원자재 수입금융(Usance)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은행이야 단기 외화차입이 막히면 그냥 단기 외화대출을 회수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면 당장 관련 산업(대표적으로 정유와 철강)이 치명타를 입고 자칫 경제가 마비될 수 있었다. 결국 당국이 무려 170억불 남짓의 긴급 외화유동성을 지원했지만 그 충격은 오래 갔다.

어떤 해법이 가장 합리적인가? 하나는 번거롭게 구조를 바꾸지 않고 지금 이대로 가는 것이다. 그런 위기는 드문 만큼 여차하면 당국이 해결하면 된다는 논리다. 다른 하나는 일시적인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중소기업도 아닌 대기업이 경상적인 원자재 구입자금을 단기차입에 의존하는 경우는 드물다. 당연히 장기자금(주로 회사채)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면 환율변동에 따른 우여곡절은 겪더라도 극단적인 유동성 위기로 확대되지는 않는다. 최소한 은행까지 위기에 몰려 온 나라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 어떤 것이 우리나라 경제와 금융의 발전단계에 적합한지를 요모조모 따져보고 결정할 이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논의조차 없는 현실은 몹시 불편하다.

◇ 금융시장의 연결고리

금융시장은 수 많은 하위 시장들이 얽혀서 거대한 생태계를 구성한다. 따라서 어느 한 부문에 문제가 생기면 연관시장까지 부작용이 미치고, 이를 해결하려면 넓은 범위를 함께 정비해야 한다. 금융제도의 변경은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이해관계의 충돌로 이어지고 자칫 발목이 잡힌다. 그래서 확실한 명분과 추진 의지, 그리고 보다 큰 틀에서의 통찰과 조율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현 정권 출범 이후 단기금융시장 제도개선을 역점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CP는 법안까지 마련되었고, 콜과 RP는 아직 진행 중이다. 콜 과잉과 RP 부진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리고 이는 금융시장의 과도한 유동성 리스크와 채권시장의 유동성 부진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콜을 규제하고 RP를 활성화해야 한다. 원론에는 이의가 별로 없지만 문제는 실천 방법이다. 막연한 당위론으로는 현장의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한다. 유동성 리스크는 터지기 직전까지 바로 옆에서도 모르는 은밀한 폭탄이고, 채권시장의 유동성 증진 효과는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일 뿐이다. 두 장관이 지적한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리스크 부담` 및 `쏠림 현상`과 단기금융부채(특히 무담보) 급증은 같은 현상의 세 가지 모습이다. 이제라도 그 실태와 대안에 대한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한편, 회사채 시장은 기업이 장기 안정자금을 차입하고 시장의 변동성을 완충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경로다. 최근 회사채 시장은 은행대출이 위축되면서 양적으로 크게 확대되었지만 질적 측면을 상징하는 만기는 계속 단기화되고 있다. 더불어 하위 등급 회사채 시장의 소외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전형적인 외화내빈이다. 최근 회사채 유통이 리테일 시장에 크게 의존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미 하부구조(신용평가, 시가평가 등)의 취약성을 핑계 삼을 단계는 지났다. 그리고 신용보증을 통한 시장활성화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회사채 시장이 안정궤도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증권-펀드-연기금`의 정통 경로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리테일 시장은 언제 어떻게 급제동이 걸릴지 누구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증권의 시장조성 기능, 펀드의 장기/대형/공모화, 연금의 선도적 역할 등을 끌어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정통 경로의 활성화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정책은 결국 법령의 문구를 바꾸는 행위인데 이처럼 여러 하위 시장의 수많은 규제와 관행들이 얽혀있는 이슈는 좀처럼 다가서기 어렵고 성과도 잘 안 나온다. 그래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고, 그래서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 부동산 거품

우리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일단 붕괴가 현실화되면 충격이 클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 한다. 부동산 거품 붕괴의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있는 미국과 비교해보면 LTV 수준은 낮지만(위기 전 미국의 절반 수준),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의 비중이 워낙 높다(미국의 2.5배 수준). 만일 미국처럼 부동산 가격이 30% 넘게 떨어진다면 가계가 받는 타격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적극적인 대응으로 부동산 가격의 급락을 제어한 점은 천만 다행이지만 불씨는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 부동산 거품은 직접적으로는 유동성 공급, 조금 더 멀리 보면 세제 정책과 상당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현 시점에서 부동산 이슈는 금융정책 방향의 핵심적 변수다.

가계의 주택대출은 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증가세는 부담스럽지만 LTV는 여유가 있다. 다주택 보유자와 자영업자 대출에서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최근의 증가세 둔화에 대해서도 한숨 돌렸다는 시각과 임계점에 임박한 고원 현상이라는 시각으로 엇갈린다.

건설/부동산업의 과다 신용에 대해서는 문제의식과 해결방식에서 다소 괴리가 있다. 정책방향은 대체로 점진적 해결을 추구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용구조만 악화되고 있다. 은행과 저축은행은 다소 부담이 줄었지만 그 이상으로 PF ABCP(대부분 리테일)가 늘었다. 은행의 부담은 조금 줄고 전체 금융시장의 부담은 조금 더 커지는 묘한 양상이다.

부동산 이슈는 가계의 자산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우리 가계의 자산은 뚜렷하게 부동산 비중이 높고 금융자산/금융부채 비율은 낮다(전세까지 감안하면 더 낮아진다). 보통 국민성이나 역사적 경험에서 원인을 찾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면 가계의 자산구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세제상의 불균형이었다. 국민경제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제상의 유인을 적절히 활용하여 가계의 채권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부동산 이슈는 금융산업의 지각변동을 낳는다. 은행대출은 물론이고 상거래 신용과 자본시장(특히 ABS)까지도 리스크 관리를 부동산 담보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담보가치의 하락은 곧바로 신용공백 사태로 이어진다. 미리미리 리스크 관리의 중심을 담보에서 신용분석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위기로부터 한 숨 돌리고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마저 움트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봄 노래가 아니라 금융시장의 약한 고리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치열한 개선 노력이다. 금융위기의 진행 과정을 돌아보면 통상 위기 2년 차의 가장 큰 과제는 구조조정이었다.

윤영환/신한금융투자/Credit analy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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