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빡! 1000℃ 쇳덩이 덮친다" 제철소 안전 지키는 '눈달린 AI'[르포]

포항제철소 곳곳 AI CCTV 도입 현장 가보니
AI가 슬라브 삐뚤어진 각도 보고 사고 가능성 예측
시설 자동 중단까지 이뤄져…사행 사고 '제로'
기관차 철길 안전·선재 제품 자동 검수에도 AI 접목
  • 등록 2024-08-25 오후 12:00:00

    수정 2024-08-25 오후 7:08:41

[포항=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4연주공장. 고로에서 쇳물을 조금씩 흘리면서 굳혀, 사각형 모양의 크고 두꺼운 슬라브(판)을 만드는 이곳에선 아직 쇳물의 열기를 품고 있는 시뻘건 슬라브들이 대형 롤러에 실려 느릿느릿 이동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속도는 느리지만, 뜨겁고 거대한 쇳덩이를 다루는 공정이라 현장 직원들 눈에는 긴장감이 비쳤다. 박중해 포스코 생산기술부 과장은 “지금 보이는 저 슬라브는 길이 8미터(m), 폭 2.2m, 두께 25센티미터(㎝)로 무게는 35톤, 온도는 1000도씨(℃)에 이른다”며 “롤러 위를 이동할 때 슬라브 위치가 틀어져 설비와 부딪히면 공장 전체가 멈추는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치가 틀어진 슬라브가 계속 이동하다가 가드에 끼이면 다시 슬라브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장비를 동원해 빼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려 그동안 제품을 생산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도 막대하다는 얘기다.

비전AI CCTV가 적용된 포항제철소 연주공장 슬라브 절단 공정(사진=포스코DX)
포항제철소 연주공장 운전실 모습(사진=포스코DX)
4연주공장은 스마트 CCTV를 도입한 2022년 1월 이후 지금까지 이같은 슬라브 끼임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장 사무소에는 슬라브가 삐뚤어지는 ‘사행(蛇行)’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CCTV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일반 CCTV 화면처럼 보이지만 포스코와 IT 전문 계열사 포스코DX가 제철소 맞춤형 인공지능(AI) 기술을 자체 개발해 접목한 것이다. 안성훈 포스코DX IT사업실 스마트팩토리 그룹 프로는 “CCTV 영상은 실시간으로 AI 서버에 전송되고, 사고 예측 알고리즘에 따라 계속 분석이 이뤄진다. 분석에 따라 슬라브 사행으로 사고 발생 소지가 높다고 예측되면, 자동으로 설비를 일시 멈출 수 있는 기능까지 구현돼 있다”고 소개했다.

스마트 CCTV 도입 후 현장 직원들은 하루 종일 모니터를 지켜봐야 하는 단순업무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현장에서 만난 4연주공장 조업 담당자는 “설비 사고가 발생하면 모니터링을 제대로 못 한 책임이 조업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AI가 1차적으로 사행을 찾아 주면서 마음의 부담이 많이 줄었다”며 스마트 CCTV 도입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다.

스마트CCTV는 선재 제품 검수장에도 도입돼 있었다. 코일 형태로 감겨 있는 선재 제품이 고객사로 출하되기 전 생산 정보와 차량에 상차된 현품 정보가 일치하는 검수하는 곳이다. 작년 7월 스마트 CCTV 시스템을 도입했고 안정화 기간을 거쳐 올 2월부터 본격 가동 중이다. 기존에는 검수자가 제조실행시스템(MES)에 기록된 송장정보와 선재 제품에 부착된 라벨을 육안으로 대조해야 했다. 따라서 사람으로 인한 오류가 발생하거나, 제품라벨이 검수위치 반대편에 부착될 경우 검수자가 적재 차량 위에 올라가 확인해야 하는 위험이 있었다.

포항제철소 선재제품 검수장에서 차량에 실린 선재제품을 스마트 CCTV가 자동으로 검수하고 있다.(사진=포스코DX)
선재제품 라벨 자동검수 모니터링 화면(사진=포스코DX)
스마트 CCTV 도입 후 선재 제품 검수장에선 차량 진입 후 모든 작업이 자동화됐다. 일단 정면의 카메라로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고, MES를 통해 해당 차량에 실어야하는 상품정보를 불러온다. 그 다음 12대의 카메라가 제품에 부착된 라벨을 모두 찾고, MES 송장정보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현장 사무소 모니터에선 선재 제품에 부착된 라벨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화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성훈 프로는 “객체 인식 알고리즘이 적용된 AI가 카메라를 상하·좌우, 줌인·줌아웃 등 다양한 제어를 통해 스스로 라벨을 찾아 정보를 읽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뜨거운 쇳물을 나르는 운송 기관차의 안전도 AI가 책임지고 있었다. 포항제철소는 용광로에서 제강공장까지 쇳물을 운반하는 기관차가 30여대에 달하고, 건널목만 55곳이나 된다. 기관차가 시속 10킬로미터(㎞) 수준으로 천천히 달리다보니 차단기를 넘어 횡단하는 작업 보행자가 있기도 하고, 신호를 무시하고 건널목을 건너는 작업차량이 차단기 사이에 갇히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데 쇳물을 포함해 무게가 1000톤에 달하는 기관차의 제동거리는 100m로 상당히 긴 편이어서 뒤늦게 건널목에 갇힌 차량 등을 발견하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철도 건널목에 비전AI 기술이 담긴 CCTV가 설치된 모습(사진=포스코DX)
철도 건널목 안전을 높이기 위해 포항제철소는 포스코DX와 함께 비전(Vision) AI 솔루션을 개발했다. 철도 건널목 주변의 작업자와 차량 등 위험요소에 대한 CCTV 영상을 분석하고 기관차 운전자에게 사전 알람을 고지하는 솔루션이다. 향후에는 솔루션을 고도화해 기관차를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것도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윤일용 포스코DX AI기술센터장은 “그동안 서비스형 AI 기술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면 효율화, 자율화, 무인화 등 산업현장의 요구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산업용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산업용 AI야 말로 실질적 재무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로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산업용 AI가 사람의 역할을 도와 숙련도 편차로 발생했던 제품의 질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포스코 제철소의 작업 환경과 조업 노하우가 녹아 든 DX 기술을 바탕으로 꼭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과 위험한 현장에서의 작업 등을 중심으로 AI를 대체해 가며 제철소의 인텔리전트 팩토리 전환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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