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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최장 100일로 예정된 특검이 올 연말 출범해 다음해 4월까지 이어지는 타임테이블도 판박이다. 삼성 특검은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의 동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사장단 인사 4개월 연기 등으로 결론이 났었다. 지난달 등기이사 선임으로 책임 경영에 나섰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최대 위기를 맞은 이재용 부회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 특검 이후 9년만 사장단 인사 연기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12월 초에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었지만, 이재용 부회장 등 9개 그룹 총수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가 오는 6일로 잡히면서 내년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이 부회장은 두 번의 연말 인사를 모두 이 회장 취임일인 12월 1일에 발표한 바 있다.
삼성이 2000년대 이후 연말 정기 인사를 미룬 경우는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특검 이후 9년 만이다. 당시 삼성은 매년 1월이던 사장단 인사를 넉 달 뒤인 2008년 5월 14일에 단행했다. 앞서 특검의 수사 발표(4월 17일)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 퇴진을 선언한 지 3주 만에 이뤄진 그해 인사에선 사장 승진자가 3명에 불과했다. 임원 승진자도 117명으로 역대 최소 수준에 그쳤다.
당초 올 연말 인사에선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과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에 대한 문책 등이 맞물려 큰 폭의 물갈이가 점쳐져 왔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인사 규모가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인사 시기도 내년 1월 중순까지인 국정조사(60일)와 4월까지 이어질 특검(최장 100일) 일정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삼성 2인자인 최지성 부회장의 거취 문제도 최순실 정국에서 새로운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2008년 삼성 특검과 최순실 게이트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특검은 미전실의 전신인 ‘전략기획실’(옛 구조본)을 압수수색했다. 이번에도 검찰은 11월 한달 간 보름 간격으로 미전실을 2차례나 압수수색했다.
특히 검찰이 두 번째 압수수색 대상으로 최 부회장의 서초사옥 42층 사무실을 선택한 것은 삼성 특검 때 이학수 전 부회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것과 유사하다. 최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발탁해 중용한 인물로 2012년 6월, 김순택 초대 미전실장(부회장) 후임으로 임명돼 4년 넘게 그룹 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검찰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특혜 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대한 의혹 등에 대한 수사 결과를 특검에 넘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은 미전실이 삼성과 최씨가 연루된 각종 의혹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따라서 특검도 최 부회장과 미전실에 대한 추가 수사나 압수수색 등을 또다시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전실 해체 또는 유지 여부도 관심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되고 있는 미전실의 존폐 여부도 주목할 부분이다. 9년 전 특검에서는 경영진 퇴진과 함께 전략기획실 해체가 쇄신안에 포함됐었다. 지금의 미전실은 이건희 회장이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한 이후 그해 11월 폐지했던 전략기획실을 부활시킨 조직이다. 삼성 특검으로 50년만에 폐지됐던 조직을 불과 2년 6개월만에 새로 만든만큼 이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그러나 LG나 SK 등 다른 그룹들은 지주사 전환 등과 맞물려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조직을 대부분 없앴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이건희 회장 취임 30주년과 맞물리는 내년에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미전실을 폐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로 미전실이 주요 수사 대상에 오른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구조본 성격의 각 그룹 조직들은 자주 수사의 표적이 됐고 부정적인 이미지도 부각돼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해체됐다”며 “실용주의자인 이 부회장의 성향과 최순실 사태의 수사 양상 등을 볼 때 미전실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