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4차 산업혁명 시대 ‘뉴 다빈치코드’

  • 등록 2019-06-05 오전 8:14:23

    수정 2019-06-05 오전 8:15:04

[정재형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5월호 표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였다. 2019년은 그의 사후 500주년이 되는 해다.

최근에 소개된 어떤 단행본에서는 다빈치가 평생 그린 그림이 불과 20여 편도 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로마 교황은 다빈치를 제때 일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1년이면 그릴 것을 몇 년씩 연기하기도 했을 정도로 게을렀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다빈치 하면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을 위시하여 수많은 그림을 그린 화가로 생각했었는데 손에 꼽는 작품들이 전부였다니, 화가로서 생계는 어떻게 이어갔을지 조차 궁금하다.

하지만 다빈치가 정말 게으르기만 한 화가였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가 그림 그리는 일에 소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림 외에도 너무나 많은 분야에 손을 대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결코 게으른 천재는 아니었다. 다빈치야 말로 천재중의 천재라서 화가로서만 명성을 날린 것이 아니라 과학자, 기술자, 음악가, 발명가, 지도학자, 해부학자 등 다방면에 걸쳐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의 재능은 ‘노트북’이란 책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데 잠수함, 비행기 등 수많은 발명품을 스케치로 남겨 놓았다. 거기에는 카메라의 원리도 있었다. 현재 ‘카메라’로 통용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어두운 방’이란 뜻의 그의 발명품 구상중 하나다. 그는 큰 방을 상정했고 방안의 벽에 바깥 풍경이 비춘다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재주꾼을 단순히 화가로만 생각했으니 당대에도 그를 그저 게으른 화가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빈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을까.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 여전히 남아있는 수많은 학과들을 보면 다빈치의 이름은 무색하기 그지없다. 무슨 과, 무슨 과 담을 치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지 못한 채 단절된 전공의 높은 성벽. 학생들은 상상력, 창의력, 문제해결력 보다는 암기력과 빠른 답안작성에만 능력을 발휘한다. 답이 없는 문제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는 무능력한 학생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시험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엘리트라는 평가를 받고 우쭐댄다.

그래서 지금 세계적으로 다빈치 알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허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4차 산업혁명이 코앞에 닥쳤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살 수 있는 시대가 발등에 불 떨어지듯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 사방팔방으로 다빈치적 사고를 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다차원적 두뇌혁명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세상은 인간과 인공지능(AI)이 같이 공존해 살아가는 포스트 휴먼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상상하는 인간, 창조하는 인간이 로봇을 조종하며 사는 세상이 되었다.

오래전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이 있었다.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코드가 있고 그 비밀을 지켜내는 집단의 활약을 가정하여 픽션으로 그린 소설이다.

하필이면 왜 다빈치였을까. 다빈치는 그만큼 신비의 인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숨겨진 비밀을 의미하기에 다빈치는 적합한 이름이었던 것이다. 다빈치는 게으른 천재화가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그가 집안에서 뭔가를 구상했던 일은 알 수 없는 미래의 무수한 발명이었으니 그를 신비한 인물로 생각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가 구상했던 다방면의 아이디어는 500년후 인류가 먹고 살아가야 할 무한한 광맥이었다. 이제 새로운 500년을 위한 다빈치코드를 써내려가야 한다. 이름 하여 ‘뉴 다빈치코드’다. 다빈치를 통해 새로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학을 규정할 차례다. 4차 산업혁명의 모든 것은 이미 500년 전에 시작되었다. 다빈치의 만찬에 모두를 초대하는 이유는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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