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술의 르네상스를 만나다

간송미술관 `진경시대 회화대전`
겸재 정선부터 단원 김홍도까지
산수화·풍속화 등 110여점 전시
  • 등록 2012-05-17 오전 9:14:53

    수정 2012-05-17 오전 9:15:28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16일자 35면에 게재됐습니다.
▲ 쉰한 살에 인왕산 아래로 이사한 겸재 정선이 생애 후반기 일상을 맑은 필치로 그려낸 `인곡유거(仁谷幽居)`(사진=간송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인왕산 골짜기의 그윽한 집`이란 이름이 붙은 그림이 있다. `인곡유거(仁谷幽居)`. 현대의 양기와집처럼 형상화된 그 집 동쪽 모서리 방에는 사방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가 책을 펴놓고 앉아 있다. 이 그림은 겸재 정선(1676∼1759)이 스스로 생애 후반 모습을 비춘 자화경으로 그려졌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신교동과 옥인동을 나눠놓는 세심대 산봉우리를 등지고 남향해 있는 집. 겸재는 이곳에서 관아재 조영석(1686~1761)과 이웃해 살았다. 관아재는 현재 심사정(1707∼1769), 겸재와 함께 산수화와 인물화로 당대 삼재(三齋)라 일컬어졌던 이다.

툇마루 지게문 곁에 띠살문으로 된 평범한 방문, 이엉 얹은 토담이 둘러쳐진 후원, 초가지붕의 일각문. 겸재가 뛰어났던 건 `인곡유거`가 말해주듯 조촐한 생활분위기를 꾸며갈 수 있는 개결한 선비였던 데 있다. 덕분에 그 손에 의해 조선 문화의 최고 경지, 그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진경산수화풍이 고안되고 완성될 수 있었다.

진경시대(眞景時代). 조선 후기 문화절정기를 말한다. 숙종부터 정조에 이르는 125년에 걸친 이 시기는 조선성리학 이념을 뿌리로 삼아 다방면에서 조선 고유색 짙은 예술이 꽃피던 때다. 하지만 그 고유색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지점은 미술, 그 가운데서도 회화다.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창강 조속(1595∼1668)에 의해 시작된 진경산수화는 `구운몽` 작가 김만중의 조카인 죽천 김진규(1658∼1716)를 거쳐, 겸재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겸재는 독특한 진경산수화법을 만들어냈다. 중국남방화법의 묵법으로 음(陰)인 토산을, 중국북방화법의 필묘로 양(陽)인 암산을 표현한 거다. 더욱이 산수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조선 풍속대로 의복을 입혔다.

이후 주목해야 할 인물이 현재 심사정이다. 현재는 어린시절 겸재에게서 그림을 배웠지만 반(反)겸재를 선언, 중국남종문인화를 조선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조선남종화풍은 그를 통해 크게 번졌고, 이로써 당시 서울화단은 겸재의 진경산수화풍과 현재의 조선남종화풍이 주도하게 된다.

진경시대 말기를 장식한 것은 화원화가들이다. 단원 김홍도(1745∼1806), 긍재 김득신(1754∼1822), 혜원 신윤복(1758∼?) 등 쏟아져나온 화원화가들은 진경풍속화풍에 정감어린 시심을 얹어 회화미를 극대화했다.

5월과 10월, 1년에 두 차례만 기획전을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 봄 전시를 `진경시대 회화대전`으로 열었다. 이번엔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선생이 타계한 지 50년이 되는 해를 기념했다. 간송은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골동품·고서화가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것을 막았던 이다. 스물 셋에 10만석 부호가의 상속권자가 된 그는 재산을 죄다 문화재 회수에 썼다. 특히 몰입했던 건 진경시대 회화. 이 보물들은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에 모였다. 1938년부터다.

`인곡유거` 외에도 겸재의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현재의 `계산모정(溪山茅亭)` `삼일포(三一浦)`, 또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 등 쟁쟁한 진경작품 110여점이 걸렸다. 간송이 그린 `묵국(墨菊)`(1956)도 나왔다. 간송이 취중에 그렸다는 국화 그림에 외사촌형인 역사소설가 월탄 박종화가 글을 썼다. 27일까지.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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