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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발생해 56시간 동안 진행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는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와 케이블을 연결하는 일부 포트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행정전산망 사고는 ①행안부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②공공시장 전산장비 유지보수 예산을 깎은 기획재정부 등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말하는 대기업의 공공 시장 진출 제한을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행안부 역시 오래된 장비들에 대해 전수 점검 착수, 장애 발생 시 처리 매뉴얼 보완 및 서비스 중단 시 대응 매뉴얼 수립 등의 재발 방지책을 내놨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시대 전산사고를 재난 수준으로 인식해 전문성을 갖추고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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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는 25일 오후 3시 서울시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원인 및 향후 대책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번 사태의 원인은 라우터에 장비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모듈의 일부 포트 이상이라고 밝혔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 공동팀장을 맡고 있는 숭실대학교 송상효 교수는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에서 패킷을 전송할 때 용량이 큰 패킷이 유실되는 현상이 관찰됐는데, 특히 1500바이트(byte) 이상의 패킷은 약 90%가 유실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라우터 장비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모듈에 있는 포트 중 일부가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이렇게 패킷이 유실됨으로써 통합 검증 서버는 라우터로부터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패킷을 정상적으로 수신할 수 없게 됐고, 지연이 중첩돼 작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앞서 행안부는 지난 17일, 행정망 사고의 원인으로 L4스위치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라우터의 포트가 고장나 케이블을 연결해도 대규모 패킷 유실이 발생했다는 게 확인된 만큼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논란이다. (다만, 행안부는 이데일리에 해당 라우터의 내구연한은 9년이라 7년째인 현재를 노후화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마치 휴대폰 충전기 포트가 망가져 충전이 제대로 안 되는 것과 유사하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원래 장비는 정상 작동 여부를 상시 체크하게 돼 있는데, 행안부가 그동안 제대로 안 한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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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유지보수 예산 깎는 기획재정부도 문제
전문가들은 행안부뿐 아니라 전자정부의 유지·보수 예산을 크게 줄인 기획재정부도 문제라고 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정부예산안을 보면 내년 행안부 디지털 정부혁신 관련 예산(7925억 원)은 올해(7716억 원)보다 200억원 이상 늘었지만 눈에 보이는 사업 외에 유지·보수 사업은 일제히 감액됐다.
전자정부 지원 사업은 올해 493억원에서 내년 126억원으로 74%(367억 원) 삭감됐다. 지난해에도 당초 정부안 936억원에서 국회를 거친 뒤 493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행정정보 공동 이용 시스템의 유지·보수 예산은 올해 127억원에서 내년 53억 7000만원으로, 모바일 전자정부 구축사업 예산은 2021년 30억원에서 3년 내리 삭감돼 내년 8억원으로, 지방재정 정보화 사업 예산은 2021년 229억원에서 올해 74억원, 내년엔 56억원으로 줄었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사용연한이 지난 서버, 네트워크 장비들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즐비하다”면서 “정부가 예산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가운데, 이미 사용 연한이 지났지만 새 것으로 교체할 돈이 없어 L4 스위치 등 일부만 최신으로 바꿔 사용하다 보니 시스템에 충돌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김승주 교수도 “AI든 클라우드화든 일단 기본 시스템이 튼튼해야 하는데 정부 전산 서버나 장비는 늘어나는데 유지보수 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다”면서 “전자정부가 연동된 모든 시스템을 일단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전자정부 시스템에 대한 유지·보수 예산이 너무 적어 대기업은 들어가길 꺼린다”면서 “그러다 보니 인력이 적은 중소기업들이 맡게 되고 공무원들의 전문성은 대기업이 할 때보다 더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기업이 아니어서 사고가 생겼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유지·보수 예산이 너무 적어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에 대기업 진입을 허용해도 다시 하청줘서 중소기업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