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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인플레이션 폭등에 쫓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결국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만났다. 정치 권력의 정점에 있는 행정부 수장이 독립성이 생명인 연준 의장을 만난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준 독립성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회동을 강행한 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폭등 탓에 민심이 악화하고 있는 탓이다. 다만 정부와 연준이 돈풀기에 열중했다가 긴축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어, 민심을 돌려놓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인플레가 최우선 순위”
바이든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파월 의장과 회동하기 직전 공개 발언을 통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최우선 순위”라며 “나의 계획은 연준 독립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두 인사의 회동은 지난해 11월 파월 의장의 연임 발표 당시 이후 6개월 만이다. 특정 현안, 특히 연준의 주요 업무인 물가를 놓고 만난 건 사실상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함께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준은 인플레이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번 회동에서) 역사적인 경기 회복을 모든 미국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둘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행정부는 임기 내 경제 성과 혹은 선거 승리를 위한 단기 정책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그에 반해 중앙은행은 2~3년 중장기 시계를 보며 물가를 관리해야 해서다. 양측의 정책 지향점은 상충 가능성이 있는 게 통상적이다. 특히 대통령의 한마디는 중앙은행 수장에게 ‘지시’로 여겨질 수 있다.
이같은 배경 속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면담을 강행한 건 그만큼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3%를 기록했다. 1982년 1월(8.3%) 이후 40년3개월 만의 최고치다.
이날 나온 부동산 지표 역시 심각한 물가 현실을 방증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지수(S&P Dow Jones Indices) 등에 따르면 3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계절조정치)는 1년 전보다 20.6% 상승했다. 미국 전역의 집값이 평균 20% 이상 올랐다는 뜻이다. 역대 최고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까지 앞두고 있다. 집값 등 각종 생활필수품 물가가 폭등하면서 민심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미국 CBS의 4월 여론조사를 보면, 그의 지지율은 취임 이래 최저치인 42%를 나타냈다. 응답자 69%는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대응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민심을 돌려놓아야 하는 과제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이번 회동이 물가 잡기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시각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최근 인플레이션 양상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 측면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커서, 총수요를 조절하는 연준 통화정책이 먹힐지 의구심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예컨대 국제유가가 연일 치솟는 건 산유국들의 원유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늘리고 기름을 많이 써서 그런 게 아니다. 5월 마지막 거래일인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14.67달러에 마감했다. WTI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초고유가 속에서 5월 한달간 10% 가까이 뛰는 기현상을 보였다.
돈풀기에 열중했던 정부와 연준이 긴축 타이밍을 놓쳤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분석을 보면, 미국의 재정 지원이 지난해 4분기까지 물가 상승에 약 3%포인트 기여했다는 추정이 나왔다. CNBC에 따르면 이는 분석 당시 물가 상승률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가 물가 폭등을 자초해놓고 뒤늦게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나섰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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