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신조어 '홍수'…같은 한글 써도 "소통 안돼"

건설·부동산 업계·젊은 층 등에서 은어 사용 빈번
전문가 "소속감 때문에 사용"…"'패거리 문화' 생길 수 있어"
  • 등록 2020-10-09 오후 1:01:57

    수정 2020-10-09 오후 1:01:57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공구리에 빵꾸 좀 내게 저기서 보르반 좀 갖고 와”

평소 몸 쓰는 것에 자신 있었던 A(29)씨는 호기롭게 건설현장에 발을 들였다가 호되게 당했다. 노동이 힘들어서가 아닌 건설업계의 ‘은어’를 알아듣지 못해 도통 일을 할 수 없었던 것. 결국, A씨는 이것저것 도구를 한 아름 안고 들고 갔다가 야단맞았다. A씨는 작업자들 사이에서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고 훗날 설명했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사진=연합뉴스)
올해 574돌을 맞이한 한글날이 무색하게 그 분야 구성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른바 은어가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은어의 사용으로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높일 수 있고 해당 업계 사람들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은어 사용이 일종의 ‘패거리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일본어의 잔재 등 은어로 의사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 현장에서 특히 많이 쓰는 ‘보르반’은 전동 드릴, ‘곰빵’은 자재 운반, ‘야리끼리’는 ‘할당량을 끝내다’, ‘구르마’는 수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사 현장에서 한동안 일했다던 홍모(28)씨는 “처음에는 외계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어서 많이 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익숙해지면 소속감이 들고 재밌기도 해서 사용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 쪽에서 은어는 존재한다. ‘깔세’는 계약 시 보증금 없이 몇 달 치 월세만 미리 받는 것을 ‘껍데기’는 보상금을 받지 않고 입주권만 따로 매매하는 행위를, ‘딱지’는 재개발이나 택지 개발을 할 때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 주는 입주권을 뜻한다. 이러한 은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은 부동산 정보를 공유를 이어나가고 있다.

10대나 20대 역시 은어나 신조어 등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ㅈㅂㅈㅇ’는 ‘정보 좀요’,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의 줄임말이다.

10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 교육을 하고 있는 강모(27)씨는 “학생들이 신조어나 은어를 말하는데 또 자기들끼리 소통이 잘 된다”며 “가끔 어깨너머로 듣고 신조어 등을 쓰면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은어나 신조어 등을 사용하는 이유는 소속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동질성이나 결속력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차원에서 사람들이 은어를 주로 사용한다”며 “은어를 사용해 은어가 익숙해진 구성원들은 짧고 간결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에 편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은어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것이기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다만, 은어 사용이 강화돼서 음지에서 일종의 패거리 문화가 커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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