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000150)의 모태는 창업주 박승직 선생이 지난 1896년 서울 배오개 시장(종로 4가)에 차린 ‘박승직 상점’이다. 이후 1946년 박승직 상점이 두산상회(현 두산글로넷)로 바뀌면서 두산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후 두산은 동양맥주, 두산산업,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한양식품 등을 설립했다. 소비재, 무역, 건설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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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된데다 진로가 맥주시장에 진출하는 등 경쟁이 심화됐다. 주력회사인 OB맥주는 물론 두산 계열사들이 적자에 허덕이며 전반적인 기업 구조가 약화된 상황이었다. 많은 국내 기업들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정부는 산업간 구조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를 통해 두산은 1997년 당시 외환위기로 다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1조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며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주력할 수 있었다. 재무구조와 신인도가 개선되면서 금융비용 절감 효과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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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변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1998년 3조3000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2조 원을 기록하며 15년만에 6배 이상의 성장을 일궈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100주년을 맞은 당시 또 다른 100년을 내다보면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다”며 “변신에 성공한 것은 경영진의 과감한 결단은 물론이고 이를 충실히 실행에 옮긴 직원들의 실력이 함께 어우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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